김동주기자
‘불운(不運) 전문 여배우’로 탤런트 수애(23)가 시청자들의 동정과 호감을 동시에 받고 있다.
‘불운 전문 배우’란 드라마에서 잇따른 불운을 벗어나지 못하는 역할을 맡은 배우. 수애는 MBC 주말극 ‘회전목마’(토일 오후 7·55, 극본 조소혜·연출 한희 유재혁)에서 △부모를 일찍 여의고 △일(다방 종업원)하다 남자들에게 농락당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임신했으나 계단을 헛디뎌 아이를 잃는 등 불운의 바다에 놓인 ‘진교’역을 맡고 있다.
●드라마 '회전목마'로 인기 급부상
인터넷 게시판에는 ‘진교를 더 이상 못살게 굴지 마라’는 등의 글들이 잇따르고 있다. 이 드라마의 2일 시청률은 26.1%(닐슨미디어리서치 조사). MBC ‘대장금’에 이어 지상파 3사의 드라마 중 두 번째로 높다.
수애는 지난해 6월 데뷔한 신인이다. 2월 첫 주연을 맡은 MBC 미니시리즈 ‘러브레터’에서도 갑자기 고아가 되고 사랑하는 남자도 떠나버리는 불운의 ‘은하’ 역을 맡았다.
5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수애를 만났다. “왜 불운전문이 됐느냐”고 물어봤다. 수애는 “처음에는 큰 눈이나 허스키한 목소리 때문인 듯했는데 점점 나도 알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착해 보여 오히려 불운한’ 인상으로 보이는데.
“고교(경기여상) 때는 ‘너무 착해 보이는’ 눈썹이 싫어 밀어버린 적도 있다. 그러나 이젠 얼굴 때문에 고민하지 않는다.”
―원래 눈물이 자연스러운가?
“처음엔 슬픈 생각을 떠올려 눈물을 흘렸다. 지금 진교의 인생을 생각하면 저절로 눈물이 흐른다.”
방송 드라마에서 ‘불운의 주인공’이 주목받는 것은 4년만의 일이다. 박종 MBC 드라마국장은 “‘청춘의 덫’(SBS·1999년)에서 남자에게 배신당한 심은하가 ‘널 부숴버리겠어’하고 독한 복수심을 뿜어내는 순간부터 불운 전문 여배우의 명맥은 사실상 끊겼다”고 말했다. 김영삼 정부 출범을 전후해 ‘질투’(92년) 등 발랄한 트렌디드라마가 대세를 이루면서 ‘비운의 여주인공’들은 점차 뜸해지다가 ‘청춘의 덫’ 이후 사라졌다.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68년)의 문희→드라마 ‘사랑과 진실’(MBC·84년)의 정애리→‘아들과 딸’(MBC·92년)의 김희애 등이 굵직한 ‘불운의 여주인공’들로 꼽힌다. ‘불운전문 여배우’들의 배역은 남자로부터 버림받거나 농락당하지만 운명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등 ‘남성 권력에 의해 희생되는 피학적 여성상’을 담고 있다.
―인상적이었던 눈물 연기는?
“계단을 헛디뎌 유산하고 나서 울부짖는 부분은 NG없이 한 번에 찍었다. 감정에 너무 몰입해 어떻게 연기했는지 기억도 못하다가 촬영한 것을 보고서야 알았다.”
●"우울한 모습만 보여줘 걱정돼요"
진교가 강한 호소력을 갖는 것은 시청자들에게 ‘불행한 나도 진교보다는 낫다’는 ‘상대적 보상심리’를 심어주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수애는 “지금 많은 사람들이 힘겨워 하는데 진교가 우울한 모습만 보여줘 걱정”이라고 말했다.
진교는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언니 은교(장서희)와 대척점에 있다. 박종 MBC 국장은 “진교는 극중에서 ‘나는 머리가 나빠. 나는 미련해’라고 스스로 말하는 ‘백치미’의 캐릭터”라며 “이런 솔직함 때문에 시청자들은 진교를 내숭쟁이로 보지 않고 마음을 연다”고 평했다.
수애에게 정말 그런 점이 있을까?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앞날은 생각하지 않아요. 현재에 충실하고 상황에 맞게 사는 게 제 스타일이죠”라고 웃으며 말했다.
조경복기자 kath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