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세의 L씨는 좀처럼 성욕이 생기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의무적으로’ 발기부전 치료제를 복용하고 부부관계를 갖는다. L씨는 내게 “친구들은 바람도 피운다는데 나는 왜 이 모양이냐”고 하소연했다.
L씨는 3년 전부터 고혈압 약을 복용하고 있다. 남성이 고혈압일 경우 발기부전이 발생할 가능성은 그렇지 않을 때보다 1.5∼2.5배 증가한다.
남성뿐이 아니다. 고혈압은 여성에게도 성기능 장애의 중요한 원인이 된다. 최근 미국 뉴욕 콜롬비아대 비뇨기과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평균 60세의 여성 고혈압 환자 중 63%가 성기능장애를 갖고 있었다. 이들 중 71%는 5년 이상, 42%는 10년 이상 성기능장애를 갖고 있었지만 아무도 이에 대한 치료를 받은 적은 없었다.
이 연구 결과 남편에게 성관계를 먼저 제의한 여성은 5%에 불과했다. 51%는 남편이 성관계를 요구해 오면 거절하거나 응하더라도 ‘적당히’ 대했다. 또 55%가 성행위를 생활에 중요한 부분이라고 응답했지만 동시에 실제 원하는 횟수보다 성관계가 적은 환자 또한 37%나 됐다.
고혈압이 남성이 성적으로 흥분했을 때 음경으로 흘러드는 혈류량을 감소시켜 발기력을 떨어뜨리듯이 여성에게도 질이나 음핵으로의 혈류량을 줄여 질 분비액 부족 등에 따른 성교통을 일으키는 것으로 최근 밝혀졌다. 이와 함께 음핵이 팽창하지 않아 성적 흥분이 고조되는 것을 막기도 한다. 이뿐 아니라 통증을 동반한 유방 비대와 월경 불순, 성욕 감퇴 등을 일으킬 수도 있다.
최근 ‘화이자 글로벌 조사’에 따르면 국내 40세 이상 여성의 고혈압 유병률(32%)이 세계 평균(26%)보다 높았다. 이 사실은 국내 40, 50대 여성의 성적흥분 고조 장애(40대 25%, 50대 26% 대 세계평균 22%, 25%), 성교통(25% 21% 대 16% 16%), 질분비액 감소 (21% 27% 대 18% 25%) 등 성기능 장애가 세계 평균 수치보다 높은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중앙대 용산병원 비뇨기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