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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칼럼]일본 지식인의 역사왜곡

입력 | 2003-11-10 10:54:00


요즘 일본 지식인들이 일본의 한국 침략사를 왜곡하는 발언을 일삼는 것은 한일 두 나라가 공존공영하는 미래를 건설하기 위하여 필요한 한일 양 국민의 협력을 훼손하는 것이어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지금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는 일본의 한국 침략사에 대한 비뚤어진 발언 중에서 묵과할 수 없는 대목은 한일합방은 “한국이 원해서 한 것”이라는 것과 그 당시(약 1세기 전) 한반도에서 벌어졌던 청국, 러시아, 일본 등 열강의 힘겨루기에서 “한국이 일본을 선택한 것”이라고 강조하는 주장은 이만저만한 역사왜곡이 아니다.

겉으로만 본다면 백년 전 송병준이 주도했던 ‘일진회’가 한일합방을 주장하는 청원서를 대한제국 정부가 수용해서 한일합방 정서에 당시의 이완용 총리가 서명했으니 형식상으로는 한국국민이 원해서 한 모양세가 되었고 국제법상으로도 합법적이라 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일진회가 백만 명의 서명을 받은 방법과 과정에 대해서는 하늘과 땅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을 것이고 우리는 바로 이점을 주목해야 한다.

즉 일진회 주도자 송병준 등은 그 당시 한국의 외교권과 군사권, 사법권까지 장악하고 있던 일본 통감부로부터 돈을 받아 5일장터에 몰려드는 장사꾼들에게 술을 공짜로 사 주고 술을 맘껏 마시게 한 후에 “일본인과 똑같이 살게 해달라는 청원서니까 서명해 달라”고 해 받아낸 것이 바로 백만 명의 합방청원서였다.

5일장! 5일에 한번 날짜와 장소를 정하고 열리는 장이라 하여 한반도 전역 방방곡곡 하루도 열리지 않는 날이 없었고 따라서 공짜술에 취한 무지했던 그들은 자신의 행위가 매국인지도 모른 채 비몽사몽 중에 쓰여진 서명은 백만명이 채워질때까지 매일 계속됐다. 물론 그 당시 문맹률이 90%를 웃돌았다는 사실도 도움이 됐을 것이고.

백만 명의 서명? 그러나 한편에서는 조선 지식인들의 합방반대 투쟁도 만만치 않았거늘 어찌 일본의 지식인들은 이 모든 것을 외면한 발언만을 일삼는 것인지, 실로 서글픈 일이다.

그 당시 합방반대운동은 박영효, 이승만, 안창호, 이승훈 등이 리드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것이고, 이들 지도자들을 회유, 매수, 투옥, 암살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탄압한 사실을 일제는 물론 잊지 않았을 것이다.

박영효는 철종의 부마(사위)여서 막 대할 수 없어 제주도로 정배 보냈고, 이용익·이가보 등은 러시아로, 안창호·박용익은 미국으로 망명했으며, 이승만은 투옥, 이시영·이회영·김좌진·맥린 이청천·류동열 등등 줄줄이 중국 망명 길에 올랐다는 것도 삼척동자가 다 알고 있는데 어찌 일본의 최고 지식인은 이를 전적으로 외면하는 말들만 하는 것인지 경악을 금할 수 없다.

물론 당시의 독립신문 매일신문 등이 항일투쟁에 나서서 일진회가 합방공작 등의 집중화살을 퍼붓는 것을 막기 위해 저 악명 높은 광무신문지법까지 만들어 언론 탄압을 시도하게 했지만, 정부 지도자들마저 이를 너무 심하다며 시행을 보류하게 했고 대신 자금압박으로 언론사 고사정책 감행으로 인해 독립신문도 자금난으로 문을 닫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겉보기엔 대한제국 정부가 행한 것이나 실상인즉 일본통감부 초대통감 이토히로부미가 배후에서 각본·제작·감독 모두 도맡아 했다.

그럼 일본 통감부가 어떻게 이토록 한국의 외교, 국방, 사법권까지 몽땅 장악할 수 있었나 하는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초엽까지 한국이 겪은 일본, 청국, 러시아 등과의 관계를 짤막하게 간추려 보자.

1894년 일어난 동학난을 다스리고자 조선국의 청병에 의하여 청국군이 들어오기도 전에 파병청탁을 받지도 않은 일본군이 먼저 들어와 동학군을 완전 정복시켰고 그 여세를 몰아 성환에 주둔하던 청군을 공격했으니 이것이 청일전쟁이고 이 전쟁에서 일군이 승리함으로써 한국국토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대한제국을 떡 주무르듯 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일본 낭인들이 경복궁에 쳐 들어가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것이 일본인에게 그리 힘든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른바 을미사변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사건은 명성황후가 러시아를 끌어들여서 일본을 견제하려 함으로서 저질러진 폭거였으며, 겁에 질린 고종황제가 러시아 공관에 파천(피신)하여 그 곳에서 국사를 보게 되니 러시아는 가만히 앉아서 한반도를 손아귀에 넣은 격이 되었다.

따라서 이를 좌시할 수 없는 일본이 마침내 도전하여 한반도에서의 러시아 세력을 쓸어 버렸고 더 나아가서는 남만주까지 점령함으로써 한반도는 완전히 일본이 쥐게 된 것이다. 아울러 미국은 일본이 필리핀을 침략하지 않는 조건으로 일본이 한국을 보호국으로 삼는 것을 허용하는 을사보호조약 체결이 강요되었고 2년 후엔 정미조약까지 강요 당하여 사법권까지 빼앗기는 등의 이러한 수모들은 일본군권의 강압에 견뎌내지 못한 탓이 명백하지 않은가!

따라서 일본 지식인들이 진정으로 한일친선을 원한다면 한일합방을 한국민이 원한 것이며 한반도를 대상으로 열강이 힘을 겨루는 가운데서 한국이 일본을 선택했다는 식의 역사를 왜곡하는 발언은 멈추라고 당부한다.

이동욱 (언론인·전 동아일보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