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 살인범과 여검사의 시간을 초월한 사랑을 미스테리 스릴러로 담아낸 ‘써클’. 사진제공 무비캠
운명은 돌고 돈다는 뜻의 ‘써클’. 제목대로 이 영화는 ‘꽤 많은 다른 영화들이 돌고 돌아’ 만들어진 듯한 냄새가 난다.
사형수의 사랑(‘일급살인’ ‘인디언 썸머’), 전생에 얽힌 초월적 사랑과 윤회의 모티브(‘은행나무 침대’), 신화처럼 표본화된 신체 일부와 차가운 살인의 잔혹 이미지 (‘텔미썸딩’), 심령술과 인간의 원죄적 악마성(‘엑소시스트’) 등을 지독하게 뒤섞었다.
다섯 명의 여성을 살해하고 시체에 그림을 그려 넣은 엽기 살인마 명구(정웅인)가 여섯 번째 살해현장에서 라면을 끓여먹고 있다가 검거된다. 여검사 현주(강수연)가 횡설수설에 자해를 일삼는 명구를 다루기란 쉽지 않다. 현주와 연인 사이였던 병두(전재룡)는 명구의 변호를 맡고, 병두는 최면술로 명구의 전생을 추적하면서 연쇄살인이 70년 전 기생이었던 산홍과 관계있음을 밝혀낸다
하지만 이 ‘하드고어, 심령, 전설, 미스테리, 법정, 멜로, 스릴러 영화’의 이야기는 논리적이지도 신비롭지도 않다. 여러 장르가 위아래 짝이 맞지 않는 투피스처럼 뒤섞여 구성의 밀도가 떨어진다.
주목할만한 점은 정웅인의 연기다. 그의 얼굴에선 거세(去勢)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광기어린 살인범의 다중인격적인 표정이 살아있다. 그러나 희대의 살인마가 개과천선하는 과정을 무척 도식적으로 그려낸 시나리오는 그의 재능을 가둬버렸다. 강수연은 쇼트컷 헤어스타일로 변신하며 노력했지만 다혈질 여검사의 캐릭터를 상투적으로 해석한 감이 있다. 소리 높여 욕하고 용의자의 급소를 발로 걷어차는 그의 ‘오버 액션’은 자연인 ‘강수연’을 지나 여검사 현주의 캐릭터로 내면화하지 못했다. 14일 개봉. 18세 이상.
이승재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