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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뷰]'칠판'…칠판 지고 전쟁터로 떠난 선생님들

입력 | 2003-11-11 17:46:00

칠판을 지고 학생들을 찾아다니는 선생님들을 통해 이란 현대사의 상처를 어루만진 영화 ‘칠판’. 사진제공 백두대간


이란과 이라크의 국경 지대. 늙수그레한 남자들이 무언가를 등에 지고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한 산길을 걷고 있다. 그들은 교사이고 등에는 칠판을 짊어지고 있다.

영화 ‘칠판’은 외딴 마을을 찾아다니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의 삶을 다뤘다.

어디선가 총알이 쏟아질지 모른다. 두 나라의 전쟁은 오래 전에 끝났지만 국경에서는 수시로 총격전이 벌어진다. 하지만 이들은 숨어 있다가 총소리가 멎자마자 “구구단 배워요” “글 가르쳐 드려요”라고 외친다. 한국인들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이라크와의 전쟁으로 한때 모든 것이 황폐화된 이란의 영화라는 점을 감안하면 설득력을 갖는다.

아이들은 한 끼니를 위해 국경을 넘나들면서 밀수품을 운반한다. 이들을 불안에 떨게 하는 것은 총알이나 무지가 아닌, 당장 오늘 먹을 빵이다.

영화는 ‘출장 선생’들을 통해 고통스럽고 암울하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억지로 가르치겠다는 선생님과 배움에는 뜻이 없는 아이들. 그렇지만 양자는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영화는 작고 지루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라는 칠판’에 담겨 있는 이란 현대사의 비극과 사연을 함께 읽어 내려가면 짜릿함도 느껴진다.

감독은 첫 장편 ‘사과’로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뒤 ‘칠판’으로 같은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던 사미라 마흐말바프(23)다. 그의 가족은 영화 일가로 유명하다. 아버지 모흐센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함께 이란 영화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고 사미라의 여동생 하나(16)는 올해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연소 감독으로 초청되기도 했다. 전체관람가.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