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지상주의, 영어 조기교육, 성범죄자 신상공개 등 일상 속 인권의 문제를 유머러스하게 보여주는 옴니버스 영화 ‘여섯개의 시선’. 이 중 장애인의 서울 광화문 네거리 무단횡단 시위를 담은 ‘대륙횡단’. 사진제공 잉카커뮤니케이션즈
“볼거리가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여섯 편이나 되기 때문에 적어도 하나는 관객 취향에 맞지 않을까요?”
14일 개봉하는 옴니버스 영화 ‘여섯 개의 시선’ 시사회장에서 박찬욱 감독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 영화의 장점을 설명했다. 이 영화는 외모지상주의, 영어 조기교육, 장애인, 성범죄자 신상공개, 외국인 노동자를 소재로 인권 문제를 짚은 6개의 독립 단편들로 이뤄졌다. 일상 속 인권의 문제를 짧지만 유머 있고 재기발랄하게 보여준 것이 특징. 임순례 정재은 여균동 감독 등이 참가했다.
임순례 감독의 ‘그녀의 무게’는 여상(女商) 3학년인 선경이 뚱뚱한 몸매 때문에 친구와 교사들로부터 학대받는 내용을 담았다. 담임교사는 성공적인 취업을 위한 몸매관리를 강요하고, 선경은 쌍꺼풀 수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모종의 결단을 내린다. 정재은 감독의 ‘그 남자의 사정(事情)’은 시공간이 모호한 신도시의 주거형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다. 성범죄자로 신상이 공개된 한 남자는 이웃으로부터 따돌림 받는다. 어느 날 이웃집 오줌싸개 소녀가 소금을 받기 위해 그 남자의 아파트 문을 두드린다. 뇌성마비 장애인의 일상을 그려낸 ‘대륙횡단’에는 여균동 감독의 재기가 숨어 있다. 18년 만에 처음 거리로 나선 장애인의 뒤를 밟는 카메라를 통해 그가 얼마나 많은 사회적 편견과 싸워야 하는지를 담았다.
취직을 위해 외모만 강조하는 비정한 학교를 그린 ‘그녀의 무게’(왼쪽), 더 나은 영어발음을 위해 혀 밑부분 절개수술 과정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신비한 영어나라’(오른쪽). 사진제공 잉카커뮤니케이션즈
박진표 감독의 ‘신비한 영어나라’는 영어 L발음과 R발음을 향상시키기 위해 여섯 살 종우가 받는 혀밑 절개 수술을 핸드 헬드 카메라로 보여주며 ‘과연 누구를 위한 수술인가’란 질문을 던진다. 또 박광수 감독의 ‘얼굴값’에선 여성 주차매표원과 시비가 붙은 남자가 “얼굴값 한다”고 한 말이 황당한 결말로 치닫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박찬욱 감독의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는 서울의 한 섬유공장에서 보조 미싱사로 일하던 네팔 노동자 찬드라 구룽이 행려병자로 오인돼 6년 4개월 동안 정신병원에 수감된, 웃지도 울지도 못할 실제 사건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편당 5000만원씩 지원한 이 영화는 ‘웅변적’ 무드를 벗어나지 못한다. “남자들은 어떻게 생겨도 괜찮아. 니들(여학생들)이 문제지” “당신의 신상이 공개되지 않음에 감사하라” 등 화석화된 대사와 문구들은 주제를 참을성 없이 내지른다. 대부분의 캐릭터들도 정형화돼 있어, ‘여섯 개의 소재’는 있으나 ‘여섯 개의 시선’은 없는 듯하다.
무엇보다 아이의 혀 절개 수술 과정을 5분 이상 클로즈업하면서 여과없이 보여주는 이 ‘인권’영화의 잔혹성 앞에 관객의 ‘인권’은 어떻게 될 것인지 궁금하다. 12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