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장품은 지난달 창사 이후 처음으로 5일간 경기 부천공장의 생산을 중단했다. 경기 불황으로 매출이 급감하자 여름철 비수기 동안 쌓인 재고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고육지책으로 내린 결정. 한국화장품 송진영 과장은 “더 이상 체면을 찾을 형편이 아니다”며 “기업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재고 누적을 좌시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외국산 화장품의 공세도 몹시 부담스럽다.
▽위기의 한국 화장품 업계=화장품 시장엔 ‘값이 싸지면 소비가 증가한다’는 수요공급의 법칙이 잘 적용되지 않는다. 비쌀수록 잘 팔리는 경향이 있다. 좀 더 분명히 말하면 ‘고급’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면 잘 팔린다. 전형적인 브랜드 산업이다. 소득이 늘수록 그렇다. 이 대목은 국산 화장품이 매우 취약한 부분.
여기에다 경기 불황까지 겹쳐 국내 화장품업계는 올해 외환위기 이후 처음 매출액이 지난해에 비해 10% 정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1988년 창업 후 5년 만에 업계 3위에 올라서는 경이적인 성장세를 보여준 코리아나화장품도 고전하기는 마찬가지다. 올 상반기 매출이 지난해에 비해 40% 정도 줄어든 것. 신용카드 사용에 대한 규제강화로 카드 결제 비중이 높은 ‘직판시장’이 위축되면서 매출이 급감한 것.
한국화장품, 한불화장품 등 업계의 허리 역할을 하던 중위권 업체들의 매출도 지난해에 비해 20∼30% 정도씩 줄었다.
▽수입화장품의 공세=세계 1위의 화장품업체인 로레알은 올해 한국 매출 목표를 지난해 1570억원에서 1900억원으로 늘려 잡았다. 올해 업계 3위로 올라설 계획. 앞으로 5년간 7000억원을 한국 시장의 마케팅 등을 위해 쏟아 부을 예정이다. 화장품 연간 수입액은 1999년 2억1700만달러에서 지난해 5억4500만 달러정도로 늘었다.
그러나 불황여파로 수입증가율은 2000년 52.3%, 2002년 26.4%, 올 상반기는 1.5% 정도 늘어나는 데 그쳐 수입산 화장품의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다. 한국 업체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얘기.
코리아나화장품 이영순 차장은 “전체 화장품 시장의 60% 정도를 외국산이 차지한 일본에 비해 한국은 수입산 비중이 40% 정도에 불과하다”며 “외국산과 차별화된 브랜드를 내놓지 못하면 시장 잠식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똘똘한 브랜드를 만들어라=외국 화장품에 뒤떨어지지 않는 고급 브랜드 육성. 화장품 업계의 꿈이다. 업계 1위 태평양의 ‘헤라’와 ‘설화수’ 등이 성공사례. 연 매출 2000억원이 넘는 경쟁력 있는 브랜드를 만들어냈다.
브랜드 고급화를 위해서는 마케팅 능력뿐 아니라 차별화된 품질도 필요하다. 지난해부터 국내 업체들이 쏟아내고 있는 한방 화장품이 그 같은 사례다. 외국 브랜드와 차별화할 수 있는 데다 화학성분이 아닌 천연 약재를 이용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청 관계자는 “한방화장품을 국가 차원에서 육성하기 위한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업체들도 늘고 있다. 태평양은 ‘아모레 퍼시픽’이라는 글로벌 브랜드로 올해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최근 대만 현지법인을 설립해 미국 프랑스 등에 8개의 해외 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태평양은 현재 6000만달러 수준인 해외 매출을 2005년까지 1억5000만달러로 끌어 올릴 계획이다.
한국콜마는 제품을 직접 개발해 해외 유명 브랜드에 공급하는 자체개발주문생산(ODM)방식으로 불황을 뚫고 있다. 지난해 300만달러어치를 수출했고 올해는 600만달러의 수출을 기대하고 있다.
박용기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