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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피플]영화 '올드보이'로 만난 배우 최민식-감독 박찬욱

입력 | 2003-11-11 18:09:00


《“자꾸 B급, B급이라고 하지 말아요.” (박찬욱 감독)

“하긴, 주연 최민식씨의 개런티도 너무 많은데요.” (기자)

“그건 내가 최선을 다한 노동의 대가죠. (유)지태가 감독을 한다면 공짜로 출연할 수도 있지만 ‘올드 보이’는 달라요.” (최민식)

10일 영화 ‘올드 보이’의 시사회가 끝난 뒤 만난 주연 최민식(41)과 박찬욱 감독(40)은 영화와 서로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

●B급

박 감독은 자기 색깔이 뚜렷한 저예산의 B급 영화를 지향한다면서도 ‘올드 보이’에서는 스타(최민식)와 돈(순수 제작비 33억원)을 쓸 만큼 썼다.

“B급이란 표현은 싫어요. 저는 흥행공식을 알고 있죠. 다만 돈 된다고 내 색깔을 포기하는 게 싫다는 것입니다.” (박 감독)

“정말 좋아하는 여자(영화)랑 ‘찐하게’ 만났다 헤어진 느낌이죠. 이 연애 때문에 많이 배우고 뉘우쳤어요.” (최민식)

최민식(왼쪽)과 박찬욱(오른쪽)

●영웅

21일 개봉되는 영화 ‘올드 보이’. 영화는 15년간 영문도 모르고 감금당한 오대수(최민식)의 이야기를 다뤘다. 손목과 혀를 자르는 장면 등이 잔혹하고 어둡다. 같은 이름의 일본 만화가 원작이지만 20여개의 결말을 갖고 고민했다고 한다. 극중에서 오대수는 “내 이름은,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산다고 해서 오, 대, 수라구요”라고 할 만큼 그럭저럭 살아가는 인물. 하지만 그는 극중에서 “(감금기간이) 15년인 줄 (미리) 알았으면 좀 쉬웠을 텐데”라며 절규한다.

이 영화는 복수와 잔혹 액션이다. 하지만 박 감독은 이 영화를 영웅담이자 휴먼 스토리라고 잘라 말했다.

“영웅하면 로맨틱하고 멋있는 사람을 떠올린다. 그게 할리우드가 만든 영웅의 얼굴이다. 하지만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은 어이없는 운명에 굴복하지 않는 용감한 인간, 오대수다.”(박 감독)

“영웅? 박 감독에게 낙지 두 마리 주어보세요. 혀 자르는 장면이야 소리만 지르면 됐지만 산낙지를 삼키는 대목에선…. 낙지가 아니라 아예 문어 수준이었죠.” (최민식)

●최민식의 변명

15년간 갇혔다 나온 오대수와 일식집의 보조요리사 미도(강혜정)의 격렬한 섹스신이 있다. 최민식은 촬영 후 이 장면이 담긴 테이프를 부인과 함께 봤다.

“미도는 정말 처음인 것 같고 대수는 진짜 15년 만에 하는 것 같다고 말하더군요. 낯 뜨거울 수도 있는데 내 연기를 칭찬하더라고요.”

○‘올드 보이’의 운명

영화 ‘올드 보이’는 박 감독의 전작 ‘복수는 나의 것’보다 세련되고 정교해졌지만 여전히 그 ‘독한’ 색깔은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들지 모른다.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살인의 추억’이 나왔을 때 처음 몇 백만 명을 예상한 이가 없었어요. ‘영화는 괜찮지만 흥행은 별로일 것’이라는 반응이었죠. 빅 히트작에는 통상의 기준을 뛰어넘는 뭔가가 있어요. 또 그러길 바랍니다.” (박 감독)

“어떤 세상이 나를 매혹시켰느냐가 중요하죠. 영화는 감독의 세계이고, 난 박 감독이 만들어준 그 세상에서 마음껏 놀았습니다. 관객들이 판단하겠지요.” (최민식)

●선택

두 사람은 “마침내 할 일을 했다”고 한다. 최민식은 박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를 본 뒤 그가 연출하는 영화면 어떤 작품이든 선택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박 감독은 “최 선배를 선택한 뒤 그 연기를 상상하면서 시나리오를 스무 번이나 바꾸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고 말했다.

“최 선배, 이제 로맨틱 코미디나 멜로 영화 찍고 싶어요.” (박 감독)

“맞아, 액션에 복수란 말만 들어도 우울하다. 나도 진짜 연애하고 싶다. 최민식의 멜로!”(웃음) (최민식)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