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어느 나라에서 각 직업군의 대표들이 모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은 무엇인가에 대해 토론을 했다고 한다.
맨 먼저 의사가 “신이 세상을 창조한 뒤 제일 먼저 한 일이 바로 아담의 갈비뼈를 빼내는 수술을 해 이브를 만든 것이 아닌가. 그러니 의사가 가장 오래된 직업일세”라고 말했다. 그러자 건축가가 “신이 아담을 수술하기 전에 한 일이 무엇인데? 혼돈 속에서 질서를 설계해낸 것이 아닌가. 따라서 건축가가 더 오래된 직업이야”라고 반박했다. 그 말을 듣고 정치인이 씩 웃으며 ”그 혼돈은 누가 창조했는데?”라고 말해 토론이 종결됐다는 얘기다. 혼미한 우리 정치 상황을 생각하면 웃어넘겨 버릴 수만은 없는 농담이다.
▼ 의대집중 현상은 고용불안 때문 ▼
정치인이나 건축가보다 오래되지 않은 직업인지는 몰라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직업은 의사라고 할 수 있다. 이과계통의 우수한 인재들은 거의 대부분 의대에 진학하고 싶어 하고 여타 이공계를 기피한다는 것이다. 옛날보다 의사가 급격히 늘어 상대적으로 보수가 낮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까닭은 무엇일까.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이공계 직업의 고용안정성이 급격히 낮아졌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이공계에 진학해 대기업에 취업하면 안정된 직장이 보장됐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 유연화’의 기치 아래 진행된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런 관행이 파괴됐다.
따라서 자격증이 있어 자영업이 가능하고 취직을 하는 경우에도 고용이 훨씬 더 안정적인 의사라는 직업의 매력이 상대적으로 커진 것이다. 문과계통에서도 변호사 수의 증가에 따른 상대적 보수의 하락에도 불구하고 사법시험 지망생이 늘어난 것도 똑같은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더해 외환위기 이후 제조업의 미래가 어두워진 것도 이공계 기피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자본시장의 개방으로 인한 경영권의 불안 및 배당 압력의 증대, 차입을 무조건 죄악시하는 잘못된 재벌정책, 금융기관의 기업금융 회피 등으로 우리나라의 제조업 투자는 급감했다. 91∼97년 우리 제조업체의 유형자산(기계 건물 등)은 연평균 12%가량 증가했으나 외환위기 이후(98∼2002년)에는 연평균 3%가량 증가에 그쳤다. 그나마 이것도 외환위기 이후 부채비율을 갑자기 낮추라는 정부정책 때문에 기업들이 자산재평가를 통해 자산가치를 ‘인위적’으로 늘렸기 때문이다. 이런 인위적 증가분을 배제하면 우리 제조업체의 유형자산은 이 기간 연평균 2%가량 감소했다. 자산의 노후화에 따른 감가상각을 보충할 만큼도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공계 졸업생의 대부분이 제조업체에 취직하거나 이를 직간접적으로 돕는 연구직에 종사하게 되는 현실에 비춰 볼 때 제조업의 미래가 어두워지면 이공계 직업의 상대적 매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이공계 인력만 중요한 것은 아니며 의사나 변호사도 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선진대열에 진입하고 중국 등의 추격을 피하려면 고급 과학기술 인력의 양성은 절체절명의 과제다.
▼제조분야 안정적 일자리 늘려야 ▼
최근 정부도 이공계 기피 현상의 심각성을 인정해 이공계 최고급 연구인력에 대한 병역특혜를 부활하고 정부 공무원 채용에서 이공계 출신의 비율을 늘리는 특별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런 대책은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병역특혜는 극소수 최고급 연구인력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다.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서는 훨씬 더 광범위한 인력에게 이공계를 지원할 유인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공계 출신 공무원 임용 확대도 과학기술과 행정간에 다리를 놓아 주는 중요한 집단을 양성하겠지만 이는 이공계 인력의 일반에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공계로 우수 인력을 다시 끌어들이려면 투자를 가로막는 제도와 정책을 고쳐 제조업에 다시 활력을 불어 넣고 노동시장 유연화를 빙자한 고용의 불안정성을 시정해야 한다. 이렇게 해 이공계 일자리가 장래성 있고 안정적인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있다는 확신을 젊은이들의 마음속에 심어주지 않으면 이공계 기피현상은 지속될 것이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고려대 교환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