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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마당]김용희/'成功 강박증’ 떨쳐버리자

입력 | 2003-11-13 18:22:00


죽음은 이제 큰 충격거리도 아니다. 거리를 달리면서 얼마든지 화관(花冠)처럼 누워 있는 고양이의 납작한 시체를 보기도 한다. 죽음은 가소로운 어떤 것처럼 말끔하게 씻겨지고 소각되어 살아 있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진다. 이를테면 죽음의 기술적 의학화라고나 할까. 죽음은 병원에서 소독약으로 관리되고 장례 행정에 의해 깨끗하게 보살펴진다. 사실 신문지상의 무수한 죽음도 그 소각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한때 누군가는 분신자살을 하며 시대에 항변했다. 누군가는 투신자살을 하며 힘겨운 삶에 대해 침묵하고자 했다. 여기 한 소녀가 있다. 소녀는 아침에 말끔하게 세수를 하고 가족들의 격려를 받으며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러 갔다. 그런데 소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소녀는 시험을 치르던 중 교실을 빠져나갔다. 소녀는 건너편 아파트 옥상에 올라갔다. 모든 일은 한순간에 일어났다. 그리고 끝이 났다.

소녀는 자신의 죽음을 신문의 한 귀퉁이에 남기는 것으로 우리에게 부고장을 던졌다. 죽음은 이 시대에 이미 습관화되고 관습화돼 있지만 어린 소녀의 죽음에는 뭔가 석연찮은 안타까움이 있다. 과연 소녀의 죽음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한국 사회에서 대학입학은 평생의 기득권을 쟁취하는 문신의 과정이다. 몸에 새겨진 학벌은 평생을 지배하는, 지워지지 않는 바코드가 된다. 그러나 나는 한국에서의 대학입학제도의 문제에 앞서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강박증을 이야기하고 싶다.

사실 한국의 근대화 과정은 타의에 의해 급진적으로 진행돼 온 서구자본 이식의 역사였다. ‘우리 것이 아닌 바깥’에 의한 근대화였다. 강제된 식민화의 체험 속에서 늘 정체성의 문제가 혼란스러웠다. 역사적으로 한국민이 누리는 문화는 자생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대체문화’라는 사실이다. 중화사상이 그러하고 일본을 통한 서구문명 이식이 그러하다. 전범을 자기 안에서 찾을 수 없는 문화, 그 공백이 한(恨)의 공격성으로 나타난다. 한의 구조에 내재된 공격성이 극단적 학벌주의나 유교자본주의의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다.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것, 그것은 타자에 의해 이식된 신념이다. 한국 사회에 구조화되어 있는 전범이다. 끝없이 타자에 의해 만들어진 전범을 모방하고 따라가야 한다는 강박증이 한국 사회의 일상을 식민화한다.

소녀는 이 엄격한 시스템과 자기발생의 근거를 찾지 못한 센티멘털리즘 사이에서 분열된 자의 초상이다. 어떻게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어린 중학생들에게만 분향을 할 수가 있겠는가. 소녀의 죽음은 철없는 한 소녀의 어이없는 죽음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강박증의 화신이었으니, 성공과 명성과 자본의 맹목적 숭배자였으니, 우리 안에도 이미 이 공격적 자기 도주의 위협이 내재해 있는 것이다.

치열한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자기존재의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 가치 있는 일에 대한 자발적 탐구가 필요하다. 자기 안에서 스스로 역사의 전범을 찾아내야 한다. 이것이 소녀의 신체를 소각하는 것이 아닌, 무덤 속에 잘 매장하는 일이다.

김용희 평택대 교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