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의원 선거 승리를 손에 넣고 다시 등장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연립정권에서는 자위대의 이라크 파견이 최초이자 최대의 일이 될 것 같다. 내년 여름 참의원 선거까지의 정권 제2막, 스포트라이트는 외교와 안전보장에 쏠릴 것이 틀림없다.
총선에서는 이 문제가 결정적 쟁점이 되지 못했다. 총리는 무엇을 위해 자위대를 내보내는지 국민에게 차분히 말한 적이 없다.
고이즈미 내각의 한 각료는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치안에 필요한 순찰차 제공, 그 다음에는 항공자위대 수송 지원, 마지막으로는 이라크 정세를 살펴가면서 육상자위대의 파견을 결정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왜 이것을 전부 한꺼번에 허겁지겁 보내야 하는가.”
필자도 비슷한 생각이다. 이라크 지원은 이라크인에 의한, 이라크인을 위한 나라를 만든다는 외교적 관점에서 이뤄져야 하며 자위대를 내보내더라도 항공자위대에 의한 수송 지원에 그치는 것이 상책이다.
‘찔끔찔끔, 우물쭈물’ ‘우표 외교’라고 비판받았던 걸프전 당시의 상흔이 다시 도지는 것일까. 고이즈미 정권은 이라크 지원(대미 지원)에 있어 무리하게 발돋움하려고 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전부터 알고 지내는 미국 외교관도 이런 불안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만일 파견한 자위대에 희생자가 몇 명이라도 나오면 일본의 여론이 이를 받아들일까.”
만일 받아들일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서면 일본이 이라크 재건에 관여하는 일은 한꺼번에 후퇴해 기껏 쌓아온 미일 안보협력도 무너지고 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다.
9·11테러 이후 고이즈미 총리는 아프가니스탄전쟁, 이라크전쟁에서 앞장서 대미 지원에 나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단단한 유대를 맺어왔다. 고이즈미 외교의 제1막은 대미 지원으로 시작해 대미 지원으로 끝났다.
미일 정상의 신뢰는 일본의 중요한 외교 자산이다. 그러나 자위대 파견에 관한 일 처리를 보면서 위험을 느낀다. 대미 일변도의 위험성이다.
미국에 찰싹 달라붙은 고이즈미 외교는 아시아의 ‘무게’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총리가 된 해 여름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는 한국 중국의 격한 반발을 샀고 심리적, 정치적, 외교적으로도 응어리를 남겼다. 그 뒤 매년 참배할 때마다 한중 양국과의 관계는 뻣뻣해졌다. 이처럼 아시아의 역사 문제에 중압감을 느끼면 느낄수록 대미 편향은 강해진다. 실로 악순환이다.
이 막다른 골목에서 빠져나올 때다. 고이즈미 외교의 제2막은 아시아 외교에 진지하게 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됐으면 싶다. 탈아(脫亞)에서 입아(入亞)로 노선을 바꾸었으면 한다.
물론 이는 상대방의 태도와도 관계가 있다. 중국 전국정치협상회의의 한 위원은 “새 지도부는 대일 문제에 얽매이는 것을 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중국은 초조해하지 않고 있다. 경제와 지역, 북한을 축으로 중일 양국이 상호이익을 끌어내야 한다.
중국에서도 모든 역사 문제를 결부시키는 대일외교에서 졸업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도 ‘고이즈미 미워하기’에만 몰두하고 있지 않다.
정체된 대북관계도 풀어나가야 한다. 납치 문제로 운신하기가 어렵다지만 총리가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움직인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6자회담과 병행해 북-일관계를 타개해야 한다.
연말 도쿄에서 열리는 일본-동남아국가연합(ASEAN) 특별정상회담은 고이즈미 총리의 아시아 외교에서 다시없는 무대이다. ASEAN 회원국은 일본이 아시아에 보다 깊이 관여해 농산물을 포함한 시장을 개방하고 각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기를 기대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뉴라운드가 좀처럼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만큼 아시아 태평양 각국과 양국 자유무역협정을 맺는 일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고이즈미 총리가 말하는 일본의 ‘농업 쇄국’ 상태는 바뀌어야 한다. 농업의 구조개혁을 대담하게 추진하고 대아시아 개방을 일본 개혁의 용수철로 삼아야 한다. 총리가 ‘입아(入亞)’의 결단을 할 때이다.
후나바시 요이치 일본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