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분단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 그 중심인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걸어서 10여분 떨어진 곳에 포츠담 광장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포츠담 광장은 베를린 시민이 즐겨 찾던 명소(名所)였다. 카페와 호텔, 레스토랑이 대거 들어섰고 활기와 낭만, 정열이 넘쳐흘렀다. 1924년에는 유럽 최초의 교통신호등도 설치됐다.
패전과 분단은 이곳의 모습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전쟁 과정에서 베를린은 연합군의 집중공습으로 폐허가 됐다. 전후(戰後) 포츠담 광장은 베를린 장벽과 인접한 ‘지정학적 위험’ 때문에 버려진 땅으로 방치됐다. 과거의 영화(榮華)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직 장벽이 남아있던 1989년 봄. 독일 자동차회사 다임러벤츠는 회사 건물을 짓기 위해 허허벌판이었던 이곳을 서베를린 당국으로부터 사들였다. 그리고 얼마 뒤인 그해 11월 베를린 장벽 붕괴라는 세계사적 사건이 일어났다.
아무도 예상 못한 돌발 상황에 따라 이 회사는 시 당국과 협의해 새로 매입한 땅의 활용방안을 전면 수정했다. 당초 계획을 철회하고 이곳을 ‘통일의 상징’으로 부활시키기로 한 것이다.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달라붙어 ‘품격 높은 유럽풍의 도심’ 개발에 나섰다.
다임러벤츠가 98년 미국 크라이슬러를 합병해 다임러크라이슬러로 변신한 뒤에도 체계적 재개발은 이어졌다. 이런 노력의 결과 지금 포츠담 광장은 다시 시민의 사랑을 받는 장소로 탈바꿈했다.
현재 땅값은 이 회사가 사들일 때보다 10배 이상으로 뛰었다. 부동산 투자로 보면 엄청난 이익을 올릴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렇다고 ‘통일에의 공헌’이란 명분 때문에 무상기부를 했거나 손해를 봤다고 생각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얼마 전 독일 출장에서 만난 다임러크라이슬러의 우테 벨베르크 이사는 “우리는 재통일에 기여하기 위해 다시 개발했지만 그렇다고 수익성을 완전히 무시하지도 않았다”며 “수익률은 우리가 판단하기에 적정 수준인 12% 정도”라고 소개했다.
다시 살아난 포츠담 광장에서 브란덴부르크 문까지 걸어가면서 필자는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분단지역인 한반도를 떠올렸다. 이와 함께 바람직한 기업의 사회적, 국가적 책임을 생각했다.
선거 때만 되면 기업이 정치권에 돈을 갖다 바쳐야 하고 그것이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잘못된 풍토 속에서 기업이 존경받기란 힘들다. 그 돈을 마련하고 분식회계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법이나 편법은 경쟁력을 깎아먹는다. 반대급부를 노렸든, 괘씸죄를 무서워한 ‘보험’ 성격이든 마찬가지다.
정권의 총대를 메고 북한에 뒷돈을 퍼부었다가 거덜 난 ‘현대의 비극’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잘못 해석했기 때문이다. 대북(對北) 지원이 무조건 잘못됐다는 말이 아니다. 민간기업이 냉정한 ‘비용-편익 분석’조차 없이 수익성 없는 사업에 무리하게 매달려 투자자와 임직원, 국가 모두에 피해를 준 것이 안타깝다는 뜻이다.
다임러크라이슬러는 독일에서 포츠담 광장 부활의 한 주역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에 따른 자부심도 강하다. 기업과 사회의 공생(共生), 기업의 사회적 기여란 측면에서 벤치마킹할 사례가 아닐까.
권순활경제부차장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