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월요포럼]김병익/과학과 인문학, 通해야 한다

입력 | 2003-11-16 18:07:00


지난달 하순 연세대 의대 강당에서 조촐하지만 흥미로운 심포지엄이 열렸다. 주제는 ‘의과대의 문학 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문학담당 학자들의 발표는 국내외 문학에서 의학과 의사가 어떻게 문학작품 속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느냐는 문제에 집중됐지만 이제껏 ‘소가 닭 보듯’ 멀뚱했던 의학과 문학이 자리를 함께해 정신과 육체가 한 몸임을 확인해 주는 대화의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두 개의 문화’ 소통 불가능 상태 ▼

연세대 의대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이번 학기에 문학 강의를 개설했고 시인이자 의사인 마종기씨를 중심으로 과학도인 의대생들에게 인문학의 정수인 문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의과대의 문학교육, 그 당위성과 방법’을 발제한 마씨에 의하면 미국에서는 80년대부터 의대에 문학교육 과목이 개설돼 지금은 전국 의과대의 8할이 이 강좌를 시행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의과대들에서도 이 움직임이 확산될 것 같다는 것이다.

과학과 인문학이 높은 장벽을 쌓고 서로 외면하는 사태를 경고한 영국의 과학자며 작가인 찰스 스노가 ‘두 개의 문화’를 발표한 것이 동서간의 핵무기와 우주과학이 치열하게 경쟁하던 1959년이었다. 그 뒤 두 문화간의 격절 상태는 더욱 심해져 일반인은 물론 전문가들조차 소통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고 같은 과학 혹은 인문학이라도 각 전공분야 학자간의 대화가 어려울 정도로 분화됐다.

그런 가운데 인문학은 구조주의며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조가 진행됐고 과학과 기술은 우주론에 이어 컴퓨터공학과 생명공학, 정보공학으로 폭발적인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럼에도 인류에 대한 세 가지 모욕이라는 지동설과 진화론 및 무의식의 과학적 발견이 인간학에 끼친 충격과 같은 인식변화를 과학은 인문학에 제공하는 데 게을렀고 인문학도 그 새로운 과학적 진전의 의미에 등한했다.

그런데 오늘날 과학기술의 혁명들은 기존의 인문학 체계에 패러다임적 전환을 요구하는 단계로 육박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생명공학이다. 장기이식으로부터 인간복제, 유전자 조작, 맞춤인간 생산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기술개발은 전통적인 생명관, 인간관, 사회관의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가령 생명의 시작이 수정부터인가 간세포의 형성부터인가 출산부터인가에 따라, 그 죽음이 심장사부터인가 뇌사부터인가에 따라 구체적으로 임신중절이나 안락사에 대한 윤리적 법적 해석이 달라진다. 컴퓨터·정보공학과 함께 생명공학으로 인해 인간은 피조물적 존재에서 조물주적인 존재로 거대한 위상변화를 하고 있는데 이에 따른 갖가지 문제들은 철학 신학 법학 사회학 그리고 심리학과 문학 등의 인문사회과학이 자연과학자들과 함께 담당해야 할 과제들이다.

이렇다는 것은 우리에게 의과대의 문학 강의는 당장 필요한 교육일 뿐 아니라 의학과 문학, 과학과 인문학의 교류와 제휴가 시급하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정부는 폭주하는 생명공학의 전개를 조율하기 위한 법을 제정하고, 생명공학윤리학회는 관련 주제들에 대한 각계 전문가들의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법철학자 박은정 교수의 ‘생명공학 시대의 법과 윤리’라는 주목할 저서도 나오고 있지만 ‘두 개의 문화’간의 교류와 협동 과정은 더욱 재촉되고 일반인 수준으로 확대돼야 한다. 이 작업은 대학과 학계, 정부와 기업이 힘을 합쳐 다각적으로 전개돼야 미구에 닥칠 새로운 인류사적 환경에 최소한이나마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 새 환경 대비 교류 늘려야 ▼

독일의 물리학자 한스 페터 뒤르는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얻어내는 데는 ‘직관과 상상력의 방랑’이 필요하다는, 마치 시인의 내면을 드러내는 듯한 발언을 하고 있다. 이 말은 신학자 철학자 과학자 생물학자 등 독일의 저명한 학자 5명이 1995년 이탈리아 토스카나에서 사흘 동안 벌인 ‘신, 인간 그리고 과학’(여상훈 역·시유시 간)의 토론에서 나온 것인데, 이 토론은 아인슈타인의 “종교 없는 과학은 무력하고 과학 없는 종교는 눈먼 것”이라는 말을 놓고 활발한 해석을 펴고 있다. 이 ‘종교’를 오늘의 우리는 ‘인문학’으로 바꾸어도 좋을 것이다.

한계 없이 팽창하고 있는 과학에 인문학의 방향타가 없다면 그것은 비인간화할 것이고 인간학의 전폭을 다듬어야 할 인문학에서 과학이 제외된다면 낡고 묵은 시효상실의 학문이 되고 말 것이다.

김병익 문학평론가·인하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