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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 라이프]국내유일 造船匠 김귀성씨

입력 | 2003-11-16 18:31:00

경기 하남시 선동 작업실에서 이달 말 한강에 띄울 국내 최대의 황포돛배에 대해 설명하는 조선장 김귀성씨. -하남=이재명기자


간간이 소나기가 내린 15일 오전 경기 하남시 미사리 조정경기장에서 서울 방면으로 1km가량 올라가자 나무고아원이란 푯말 옆에 허름한 비닐하우스가 나타났다.

비를 가리는 시설조차 제대로 돼 있지 않아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비닐하우스 안에는 큰 배 1척과 작은 배 3척, 완성되지 않은 배 1척이 있었다. 바닥엔 온통 나뭇조각과 대팻밥이 깔려있었고 연장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국내에서 유일한 조선장(造船匠) 무형문화재인 김귀성(金貴星·52)씨의 작업실은 예상보다 초라했다. 그러나 그 안에서 한국 전통배의 맥과 혼이 질기게 이어오고 있다.

김귀성씨가 만든 석촌호수 황포돛배.

비닐하우스 중앙에 놓인 길이 20.5m, 높이(돛대 높이) 11m, 폭 4.5m 크기의 나무배는 전통배 가운데 가장 제작이 힘들다는 ‘황포돛배’로 이달 말 한강에 띄워진다.

이 배는 복원되는 황포돛배 가운데 가장 크다. 쌀 500가마를 실을 수 있고 사람은 300명 정도는 족히 탈 수 있다.

현재 최대의 황포돛배는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에 떠있는 배로 이 또한 김씨의 작품이다. 자신의 기록을 깨며 전통배의 역사를 새롭게 써나가는 김씨는 황포돛배 곳곳에 묻어있는 선조의 지혜를 설명했다.

“황포돛배의 생명은 견고함이 아니라 유연함입니다. 많은 짐을 싣고 강을 따라 내륙을 왕래했던 이 배는 수심이 얕은 곳을 다녀야 하는 만큼 외부충격을 모두 흡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황톳물을 들인 돛을 단 배라고 해서 황포돛배로 이름 붙여진 이 배는 다른 배와는 구조부터 크게 다르다. 땅에 놓여있는데도 배 위를 걸으면 일렁거린다. 나무와 나무를 블록 쌓듯 이어붙인 것이 아니라 홈을 파서 빗겨 붙인 탓이다.

이렇게 하면 돌에 부딪혀도 나무가 엇나가지 않아 배가 망가지지 않는다. 거북선도 황포돛배의 원리를 응용한 것이라고 김씨는 말했다.

14세에 처음 연장을 잡은 김씨의 스승은 아버지 김용운씨(1997년 작고)였다. 그의 부친은 조선장의 대가로 생전에 수천척의 배를 만들거나 만드는 걸 도왔다. 아버지는 김씨에게 조선장을 강요하지 않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김씨는 대학을 마친 뒤 보험회사에 취직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연장을 놓지 않아 큰 배를 만들 때면 아버지를 도와야 했다. 결국 2년 만에 김씨는 조선장으로 돌아왔다.

이제 자신도 후계자를 키워야 할 때다. 그의 아들(20) 역시 14세에 연장을 잡았다. 그러나 ‘장인의 길은 고생길’임을 알기에 아들의 미래와 전통배의 미래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그런 김씨가 이제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1607년부터 1811년까지 모두 12차례 통신사를 태우고 일본을 왕래했던 ‘사견선(使遣船)’을 복원할 계획입니다.”

100여명에 이르는 사신이 이용했던 이 배에는 방이 14개 있었다. 그만큼 조선기술뿐 아니라 전통한옥 제작 기술과 단청, 옻칠, 자연염색술 등이 종합적으로 응용돼야 한다. 재료비 10억원에 제작기간도 3년이 예상돼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

한강에 플라스틱 유람선 대신 사견선이 떠다니는 날 김씨는 어느 때보다 조선장의 후예임이 자랑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하남=이재명기자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