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간혹 과거의 인물들이 망각의 강을 다시 건너와 재심을 청구하는 사례들을 본다. 개중에는 소송에 성공해 신원(伸寃)하는 경우도 있고, 더러는 회한의 눈물을 뿌리며 쓸쓸히 돌아서기도 한다.
어느 쪽이 됐건 국가가 제공하는 이 마지막 기회는 귀중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만큼 재심 청구의 요건은 엄격한 동시에 ‘접근 가능’한 것이기도 해야 한다. 그것이 화중지병(畵中之餠)이어서야 제도 자체가 무슨 의미를 갖겠으며 사법 정의(司法正義)를 어디 가서 외치겠는가.
그런 점에서 곧 재심 여부의 결정을 앞두고 있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지금으로부터 근 한 세대 전인 75년 4월 9일, 이 사건의 피고인 8명은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지 불과 20시간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갔다. 이처럼 정치범에 대해 재심이나 탄원의 기회도 주지 않고 서둘러 사형을 집행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없는 일로, 국제법학자협회는 이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했다.
이 사건에 대해선 그동안 ‘고문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라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고, 마침내 지난해 9월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피의자 신문조서와 진술조서가 위조되는 등 사건 자체가 당시 중앙정보부에 의해 조작됐다”고 결정함으로써 유족들이 재심을 청구하기에 이른 것이다. ‘부당한 공권력에 의해 무고한 죽음을 당했음을 공식 확인해 달라’는 취지다.
바로 이 점에 우리가 살펴볼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은 원판결의 증거서류가 위조되거나 위증이 있었다는 점이 ‘판결에 의해’ 밝혀지거나, 고문 가혹행위를 한 공무원이 유죄 ‘판결’을 받는 경우 등에 한해 극히 예외적으로 재심을 허용하고 있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인혁당 사건같이 오랜 시간이 지난 사건에서는 수사기관의 고문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다 해도 이미 공소시효가 지나 새로운 유죄 ‘판결’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아예 재심을 할 수 없게 된다.
5·18특별법에 따라 특별 재심 절차를 거쳐 무죄 판결을 받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과거 군사독재 치하에서 고문, 조작에 의해 누명을 쓰고 옥고를 치른 사람들이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길은 아예 막혀 있는 셈이다.
그러나 우리와 거의 흡사한 재심제도를 갖고 있는 일본에서는 이런 점을 고려해 1975년의 한 강도사건 재심 결정에서, 과거 판결에서 사실로 인정됐던 부분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이 생기면 재심 요건을 충족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재심을 받아들였다.
이처럼 사법부가 죄 없는 사람이 유죄판결을 받은 경우 이를 사후에라도 시정하겠다는 의지를 갖는다면 무엇보다도 군사독재 치하의 고문, 조작 사건에 대해 재심 요건을 완화하고 그 범위를 확대 해석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인혁당 사건같이 독재정권이 재판의 형식을 빌려 무고한 국민의 목숨을 빼앗은 사건에 대해선 사법부 스스로 그 잘못을 바로잡고 다시는 이처럼 부끄러운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인혁당 사건은 사법부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며, 이 사건의 재심 결과에 따라 사법부의 역사도 달리 씌어질 것이 분명하다.
이유정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