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논현동 사무실에서 롸이즈온의 공연브랜드 ‘제미로’를 상징하는 Z형 의자에 앉은 모습이 일과 삶에서 동시에 재미를 추구하는 그와 썩 잘 어울린다. -변영욱기자
당신은 쾌락주의자인가. 도발적인 첫 질문에 그는 웃으며 “그렇다”고 답했다.
문영주(文煐周·40) 롸이즈온 대표, 그는 사람의 오감(五感) 중 촉각을 제외한 미각과 후각, 시각과 청각을 충족시켜 주는 일에 매달린 사람이다. 롸이즈온(riseON)은 오리온그룹의 패밀리레스토랑 베니건스 외식사업본부와 2000년 ‘오페라의 유령’을 시작으로 ‘캣츠’, ‘시카고’ 등 국내에 대형 뮤지컬 바람을 몰고 온 공연전문기업 제미로가 합병한 기업. 합병이라지만 베니건스와 제미로는 모두 문영주라는 한 사람의 대표 아래 있었기 때문에 ‘헤쳐 모여’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올해 합병을 이룬 롸이즈온의 행보는 초고속이다. 외식사업에서는 미국의 중국식 고급레스토랑 ‘미스터 차우’를 국내에 들여와 외식사업 고급화 바람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공연사업에서는 10월 뮤지컬의 본고장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른 ‘리틀 샵 오브 호러’의 공동투자자로 나섰다. 브로드웨이의 대형 뮤지컬 ‘미녀와 야수’의 내년 8월 국내 공연계획도 발표했다.
이같이 젊은 나이에 ‘팔자 좋은 사업’을 하는 그를 재벌가 2세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터. 하지만 그도 월급쟁이로 출발했다. 90년대 초 제일기획에서 광고를 만들던 그는 장궈룽(張國榮)과 류더화(劉德華)를 등장시킨 동양제과 투유 초콜릿 광고의 히트로 오리온그룹 경영진에 의해 발탁됐다. 임무는 그룹의 새로운 사업모델을 모색하는 것. 음반, 연예매니지먼트, 커피숍, 레스토랑 등 소규모 사업을 벌이며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던 3년이 지나고 그가 내놓은 제안이 패밀리레스토랑 체인사업이었다.
“미래가 엔터테인먼트에 있다고 느꼈지만 먼저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파트너로 베니건스를 택한 것도 그들이 각종 노하우 제공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실제 그는 미국 현지에서 6개월간 주방 웨이터 매니저생활을 체험하며 그 노하우를 머리에서 발끝까지 익혔다. 그러한 투철한 승부사 정신 덕일까. 베니건스는 국내 패밀리레스토랑의 선두주자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는 미각과 후각에만 안주할 수 없었다. 2002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유치와 함께 시각과 청각의 만족에 도전하고 나섰다. 실패의 우려 속에 110억원이 투자된 이 뮤지컬은 192억원을 벌어들였다. 그리고 11월 15일 개막된 ‘킹 앤 아이’까지 올해에만 8개의 공연작을 무대에 올리며 국내 공연업계의 선두주자가 됐다.
그는 자신의 성공비결을 ‘매일 자신을 벼랑 끝에 올려놓기’라고 말했다.
“오늘의 저를 있게 한 것은 안정된 삶보다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보다 자유롭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해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 초심을 잃으면 저는 경쟁력이 없어지는 겁니다. 그게 두려워서라도 저를 계속 벼랑 끝으로 몰아넣습니다. 그래야 살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하니까요.”
그렇다면 그는 한번도 벼랑에서 떨어져본 적이 없단 말인가.
“벼랑 끝에 대롱대롱 매달렸다가 간신히 올라선 적은 있죠. 사실 제미로는 야후나 네이버 같은 인터넷 포털서비스업체로 시작했어요. 그룹 오너를 설득해 50억원이나 되는 투자를 끌어냈지만 사무실을 개장하려는 순간 경솔한 판단이었음을 깨달았죠. 그래서 6개월이나 사업실행을 연기하며 다른 사업모델을 연구한 끝에 나온 게 ‘오페라의 유령’입니다.”
그는 그 경험을 통해 ‘까불면 안 된다’는 것과 ‘포기도 잘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런 쭈삣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그의 벼랑 끝 행보는 계속되고 있다.
문 대표의 사업모델에 대해선 해외문화를 국내에 이식해 돈벌이한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실력이 안 될 때는 냉철하게 ‘기는 법’부터 배워야 합니다. 베니건스는 이제 어느 정도 힘을 키웠습니다. 베니건스가 진출한 15개국 중 한국이 매출 1위입니다. 로열티도 순매출의 2.5%로 국내 어느 외식업체보다 낮다고 자부합니다. 기는 법부터 배워 이제는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힘을 키웠기 때문입니다. 공연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공연분야에서 한국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날까지 20년이 걸릴 것으로 봤다. 배우는 데 10년, 스스로 개발하는 데 10년이 걸린다는 것. 그는 “결과가 말해줄 것”이라며 “중간에 알아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고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미래의 목표에 대한 질문에 그는 “과거의 나에서 지금의 내가 나왔고 지금의 내가 쌓여 미래의 내가 될 것”이라며 “현재에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답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오리온그룹 경영진처럼 나를 알아주고 믿어주는 상사를 만나지 못했다면 오늘의 나는 결코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모든 월급쟁이들이 부러워 할 한마디가 아닐까.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문영주씨는 ▼
△1963년 서울 생
△1986년 중앙대 영어영문학과 졸
△1989년 미국 미시간주립대 커뮤니 케이션 대학원 석사
△1990∼1991년 제일기획 광고1팀
△1991∼1994년 ㈜에이펙스 엔터프 라이즈 신규사업 팀장
△1995∼2002년 동양제과 외식사업 팀장, 본부장, 상무
△1999∼2000년 메가박스 씨네플렉 스 영화관사업담당 상무
△2000∼2003년 제미로 대표이사
△2002년 10월∼ 롸이즈온 초대 대 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