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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황호택/민주노총과 전태일

입력 | 2003-11-18 18:30:00


민주노총이 전태일 33주기를 맞아 개최한 ‘전태일 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에서 화염병과 쇠파이프가 난무하고 볼트 너트를 새총으로 쏘는 신무기까지 등장했다. 전씨의 어머니 이소선씨는 하루 전날 민주노총 단병호 위원장을 찾아가 “비폭력 시위를 해야 한다”고 호소했지만 폭력사태가 발생해 유감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이 계승하겠다는 ‘전태일 정신’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전태일이 분신한 지 33년이 지났어도 그에 대한 평가는 우리 사회에서 아직 완전한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얼마 전에는 텔레비전에서 그의 삶을 조명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해 논란이 있었지만 과거 독재정권 치하에서는 이름 석자를 올리는 것조차 금기시되던 인물이었다. 고(故) 조영래 변호사가 저술한 ‘전태일 평전’은 1978년 일본어 번역판으로 외국에서 처음 햇빛을 보았고, 저자가 작고한 90년까지 가명 속에 숨겨져 있었다.

‘전태일 평전’에는 1960년대 후반 청계천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이 구체적으로 기술돼 있다. 노동시간은 오전 8시반∼오후 11시로 하루 평균 14∼15시간. 일감이 밀려들 때는 사흘 연속 야간작업을 할 때도 있었다. 한 달에 휴일은 첫째 셋째 일요일 이틀. 작업장은 높이 3m 방을 공중에다 수평으로 칸막이를 해 2개의 작업장으로 나눈 것이다. 8평 정도에 30여명의 종업원이 앉아 작업을 했다. 먼지투성이에 환기시설도 갖추어지지 않았다. 재봉사들은 1mm라도 착오가 생길세라 손가락에 빳빳이 힘을 주어 옷감을 누르고 발로는 쉼 없이 재봉틀을 밟았다.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임금은 몇 달씩 밀리기 일쑤였다. 1970년 전태일이 노동청에 건의한 요구 조건을 읽어 보면 격세지감이 든다. △작업시간 11시간 △매주 일요일 휴무 △초과작업시 수당 지급이었다.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은 전태일이 활동했던 60년대에 비해 비약적으로 향상됐다. 몇 달 전 한 대기업 노조는 한 달 넘게 부분 및 전면파업을 벌여 연간 1000만원 이상의 임금과 수당을 따냈다. 생산직 14년차의 경우 평균 연봉이 4000만원을 넘는다. 노조의 일방적 승리로 귀결된 단체협약을 통해 휴일의 감축 없는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됐다. 한 달에 겨우 이틀 휴무하던 전태일이 지하에서 이 사실을 알면 어떤 감회일지 궁금하다.

전태일과 그의 동료들이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했던 저임의 봉재일은 모두 중국과 동남아로 옮겨 갔다. 문제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떨어지고 근로자들의 임금과 휴일이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면서 고임금 제조업 일자리까지 한국을 떠나가는 데 있다.

평전에 따르면 전태일은 틈날 때마다 ‘축조 근로기준법 해설’(심태식 저)을 읽었다. 그는 평화시장 일대의 근로조건 실태를 조사해 근로기준법 준수 모범업체를 찾아내는 운동을 폈다. 분신할 때도 근로기준법 책자를 손에 쥐고 있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외친 구호가 ‘근로기준법 준수하라’이다. 극단적인 방법으로 삶을 마감했지만 생전에 활동한 것만을 놓고 보면 전태일은 준법 운동가였다.

전태일 정신 계승을 운위하기 전에 ‘전태일 평전’을 오늘의 현실과 비교하며 꼼꼼하게 읽어 볼 필요가 있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