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가 7일 한국의 판소리를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했다. 2001년 5월 처음으로 우리의 종묘제례악이 선정된 데 이은 두 번째 쾌거다. 회원국이 추천한 56개 후보유산을 관련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 18명이 심사해 그중 28개를 선정하는 치열한 경쟁을 거쳤다는 점에서 더욱 값진 결과다.
판소리는 소리광대가 고수의 북 반주에 맞춰 긴 사설(가사)을 소리(노래), 아니리(말), 발림(몸짓)의 3요소를 갖고 극적으로 엮어가는 대 성악곡이다. 광대와 고수 두 사람이 긴 시간 연출해 내는 모습은 서양의 오페라와 같은 종합예술적 성격을 띠고 있다. 오늘과 같은 형식으로 완성된 시기는 조선조 숙종 무렵이며 그 뒤 12마당이 성립되고 서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아 8명창이 배출되는 등 조선조 말까지 황금기를 맞았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부터 일제의 한국문화 말살정책과 서양문화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1964년에 이르러서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전승의 맥을 간신히 잇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사회로부터 외면받고 있어 남자 명창의 맥을 잇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차제에 판소리를 세계의 소리로 발전시킬 방안 마련에 중지를 모을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정부는 판소리의 무형문화재 지정에 만족하지 말고 지금보다 뛰어난 명창들이 배출될 수 있도록 활성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특히 남자 명창을 양성할 유인책이 절실하다. 천신만고 끝에 득음한 명창들이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
둘째, 판소리에서 파생된 창극의 예술적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창극의 역사가 이미 100년이 됐지만 지금의 창극에 만족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장 큰 이유를 들라면 창극에 필요한 전문요원의 양성에 많은 투자를 하지 못했고, 따라서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로 작품을 만들어 왔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제부터는 판소리 명창들을 창극 배우로 하고 연출가 작가 무대요원 등도 전문적으로 양성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셋째, 판소리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야 한다. 예를 들면 창극 뮤지컬과 퓨전극들을 만들어 대중이 다양하게 판소리를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특히 뮤지컬은 요즘 세계적으로 선호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해외공연 때에는 현지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철저한 준비와 적극적인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가을 프랑스에서 열린 ‘파리 가을축제’에는 현존 판소리 5마당이 초대돼 큰 호평을 받았다. 주최측에서 가사를 자국어로 완벽하게 번역해 관객들에게 제공해 관객이 함께 울고 웃으며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파리 공연의 성공으로 올여름엔 미국 링컨센터와 영국 에든버러축제에 초대받아 비평가 상을 수상하는 등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이번 유네스코의 선정을 계기로 우리 정부도 판소리의 세계화를 위해 정성을 쏟아 주기 바란다. 종묘제례악의 경우 선정 자체에만 만족하고 이를 우리 국악 발전의 계기로 삼지 못했던 점이 참으로 아쉽다. 이번에야말로 판소리가 앞으로 우리 문화를 대표하는 최고의 ‘문화상품’으로 개발될 수 있도록 ‘판소리 발전 10년 계획’을 수립해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윤미용 전 국립국악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