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하이에서 저장성 항저우까지 ‘후항’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상하이 푸둥지역의 놀라운 발전의 힘이 여기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4년 전 준공됐다는 200km의 고속도는 아침부터 차량들로 꽉 들어찬다. 도로를 메운 것은 승용차가 아니라 대부분 10t짜리 대형 트럭과 트레일러다. 트럭이 향하는 곳은 닝보. 거기서 한국과 일본으로 가고, 태평양을 건너는 수출품이 떠난다. 거대한 트럭군의 질주는 1849년 미국 서부개척 시절 포장마차 떼의 ‘골드러시’ 장면이다. 개혁개방 25년을 맞는 중국은 이제 땅덩이 크고 인구만 많은 대국이 아니다. 강력한 성장엔진을 갖춘 ‘제국’의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중국이 밖을 향한 ‘골드러시’에 열을 올리고 있는 지금 한국에선 ‘중국러시’가 한창이다. 싼 임금에다 노사분쟁을 피할 수 있다고 한국기업들이 중국 땅을 찾은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 더욱 늘어나는 것 같다. 얼마 전 중국 성(省)들이 한국에 대규모 투자유치단을 보냈을 때 경기도의 400여개 기업이 중국으로 이전할 예정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유학바람까지 불어 베이징 왕징신청(望京新城) 지역엔 한국인 촌이 형성된 지 오래다.
▼누가 ‘만만디’라 했나 ▼
중국러시에 힘입어 한국 상품의 최대 수출국은 올 9월 미국(241억달러)에서 중국(243억달러)으로 바뀌었다. 무역도 수입보다 수출이 많다. 중국 땅에서 돈버는 재미가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눈에는 당장 보이지 않지만 문득 이런 걱정이 든다. 이렇게 가다가는 중국에 빨려 드는 것 아닌가. 한국기업이 지금까지 중국에서 만들어 낸 일자리가 100만개에 이른다고 중국 방문 길에 만난 전직 고위 경제관료는 말했다. 그 이야기는 무슨 뜻인가. 돈 버는 일을 굳이 내칠 일은 아니지만 뛰어들기만 할 것이 아니라, 기업이나 국가나 앞날을 내다보는 ‘전략’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전략’이란 궁극적인 상황을 예상한 대비책이다. 그래야 작지만 똑똑한 나라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더욱이 중국의 엄청난 흡인력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으니 하는 말이다. ‘한국엔 전략이 없다’는 비판을 종종 들어 왔다는 중국 진출 9년의 한 대기업 간부는 ‘중국을 좀 더 정밀하게 보아야 한다’고 했다. 주중 한국대사관의 현지 구상은 어떤지 궁금하다. 5000명이 한자리에서 식사할 수 있는 거대한 인민대회당을 10개월에 완성했고, ‘사스’로 고생하면서 병상 1000개의 호흡기전문병원을 2주에 만들어낸 중국인이다. 누가 중국인을 ‘만만디’라 할 수 있겠는가. 94년 시작된 베이징∼상하이 1300km의 고속철도계획에 일본(신칸센) 독일(자기부상열차) 프랑스(TGV)가 각축을 벌인 지 무려 10년째를 맞는다. 그 결말을 ‘모두 지쳐 홀랑 벗고 말 것’이라고 대기업 간부는 내다봤다. ‘만만디’에도 전략이 깔려 있는 셈 아닌가.
200년 전 조선 정조 때 초정 박제가(楚亭 朴齊家)는 청나라를 다녀온 후 요즈음의 중국통이 됐다. 수레, 벽돌 등 생활에 편리한 중국문물을 받아들이자고 주장한 저서가 북학의(北學議)다. ‘신(新)북학의’를 다시 써야 하고 문물이 아니라 전략을 논해야 한다. 중국 진출 한국기업에 대한 중국 지방자치단체장의 배려를 곧잘 평가한다. 그런데 그들이 진정 한국기업에 목을 맬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제국’을 보는 전략 시급 ▼
지금 중국의 전략은 무엇이겠는가. 세계기술과 자본을 끌어들일 수 있을 때까지 끌어들여 중화(中華)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것 아닌가. 중국 땅엔 세계적 기업들의 기술개발연구소가 거의 진출해 있다. 외국 직접투자는 5000억달러에 이른다. ‘제국 중국’의 등장은 시간문제 아닌가. 아시아권 경제질서는 이미 중화권과 태평양권으로 나뉘는 형세다. 어느 쪽으로 가야 먹고살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나오는 판이다. 중국을 정치 감각이 뛰어난 전략가로 비유한다. 그래서 국가적 전략에서 중국 탐구가 시급하다. 한국경제는 장차 중화권인가, 태평양권인가. 외교는 어떻게 되는가. 지금 우리가 간다고 하지만 실은 중국이 온 것이다. 일본에선 ‘제국 중국’에 대비한 전략논의가 오래전 시작됐다.
눈앞의 작은 성취에 빠질 일이 아니다. 전략이 없으면 오늘의 이득이 훗날 손실로 돌아오고 만다. 알고 가자는 말이다.
최규철 논설주간 ki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