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내며 세계 속의 존재를 증명했던 1980년대 말 한국 사회에 ‘국제화’는 새로운 화두로 등장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많은 예술가들은 한국적인 것, 세계적인 것, 동양적인 것, 서양적인 것은 무엇인가란 정체성의 문제와 새롭게 맞닥뜨렸다. 서양화가 최선호(48·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그림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동서양의 경계를 넘나들며 ‘나와 남’의 문제를 고민해왔다.
그는 서울대 미대에서 한국 회화를 전공했다. 대학시절 강의를 들으며 인연을 맺은 간송미술관 최완수 소장의 권유로 졸업 후 이 곳에 학예연구원으로 일했다. 그는 지금도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간송에서 배웠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오전 9시에 출근해 밤 10시까지 온갖 서화, 자기, 불상(佛像), 전적(典籍), 와당·전(벽돌) 등 많은 유물들 속에서 전통에 대한 미감을 키웠다. 당시 그는 겸재 정선의 그림 100여점을 모사하는 훈련을 통해 전통 운필(運筆)법과 용필(用筆)법도 배웠다.
무엇보다 그를 연마한 것은 최 소장이 이끄는 간송 ‘사단’의 문인적 기풍이었다. 옛 선비들의 혼과 정신을 배우며 화인(畵人)이란 결국 오관(五官)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통(統) 문화적 인간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최선호는 서양화가이면서 동양철학을 연구한 인문학도답게 치밀한 면의 분할과 감성적인 색 작업을 통해 동 서양의 화합을 꾀한다. 그림은 추상이지만 그림 제목들은 스토리를 연상시키는 문학적인 것들이 많다. 2003년 작 ‘즐거운 약속’(152x97cm Oil on Canvas). 사진제공 예화랑
배움이 쌓일수록 의문도 늘었다. 간송미술관에서 일한 지 8년여가 다 되어갈 무렵, 그는 바깥세상과 호흡하고 싶다는 갈망에 사로잡힌다. 옛것과 현재의 사람들을 소통하게 할 수는 없을까, 남의 것들을 모사하지 않고 진정 내 그림을 그려볼 수는 없을까.
그는 88년 미국 뉴욕대 대학원으로 현대미술을 공부하러 떠나 92년 귀국했다. 동서양적 사고방식을 넘나들며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를 물었고, 이를 캔버스에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생각했다. 서양에 주눅들지 않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고 다짐했다. 그는 자신에게 익숙한 재료였던 먹으로부터 연상되는 검은 색의 음영과 농담을 서양적으로 표현하려 시도했고, 이는 색과 면의 추상작업으로 확장됐다.
21일부터 12월6일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 예화랑에서 열리는 여덟 번째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전시작들은 한결같이 따뜻하고 여유롭다. 수직과 수평선으로 다양하게 분할된 면에 각기 다른 색들을 채우는 그의 그림은 서양적 미니멀리즘에 가깝지만, 이를 통해 동양적 깊이와 미감을 읽는다는 사람이 많다. 한국의 전통 염색에서 볼 수 있는 쪽, 치자, 다홍, 연두, 자주 등의 그윽한 색깔을 만들어 세련되고 현대적인 화면, 깊고 단아한 멋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미술평론가 박영택씨는 “최선호 화면의 매력은 사유로 이끄는 깊이감, 절제에서 오는 명료함, 단순함에서 오는 청명함”이라고 말했다.
‘겨울의 빛’ 152x97cm, 2003
동서양의 넘나듦이라는 평가에 대해 작가는 “면을 분할하는 것은 철저한 계량에 의한 합리적인 작업이어서 서양적이라 할 수 있겠고, 아래 위 옆 면들과의 관계를 생각하며 순간순간의 느낌에 따라 색을 얹는 작업은 동양적이라 할 수 있겠다”고 설명했다.
오래되고 묵은 것들을 좋아한다는 작가의 말대로 작품 속엔 수천수만 번의 덧칠이란 정성스러운 노동이 만들어 낸, 손때가 남아 있다. 02-542-5543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