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도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노인들의 장수법이나 이를 과학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장수의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발달해 온 과학과 의학은 평균수명을 연장시키는 데는 큰 공헌을 했지만 인간의 생리적 수명 자체를 연장시키지는 못했다. 중국 베이징(北京)의 백운관에 모셔진 팽조(彭祖) 같은 도인이나 구약성경에 나오는 옛사람들처럼 오래 살 수 있게 하는 장수법이나 장수의학은 없다.
생리적 수명에 대한 의학자들의 견해도 제각각이다. 200세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최소 150세는 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 같은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100세 넘게 사는 사람들과 그런 노인들이 많이 사는 장수촌을 찾아 연구하는 일도 활발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근래 최장수자와 장수마을을 골라서 발표하려다 통계가 맞지 않아 장수마을 지정을 취소한 적이 있다.
필자는 1984년부터 98년까지 여름방학이면 거의 매년 중앙아시아의 오지에 가서 노인들의 건강관리에 도움이 되는 전통의학의 활용 실태를 조사해 세계보건기구에 보고한 경험이 있다. 몽골, 중국의 우루무치 투루판 티베트를 비롯해 칭하이성 윈난성 광시성,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그리고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의 시골에도 가봤다.
이런 곳에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의 장수자와 장수마을에는 함정도 많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장수자와 장수촌을 판정하는 데에 짚고 넘어가야 할 몇 가지 문제점을 밝혀두고자 한다.
첫째, 장수자의 나이 확인이다. 90을 넘기면 어느 고장에서나 진짜 나이를 확인하기가 어렵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수촌인 카프카스 지방에서도 출생신고 제도가 제대로 자리 잡힌 것은 1920년대 이후다. 우리나라도 호적제도가 제대로 도입된 것은 1930년대 이후다. 그 전에 태어난 사람의 경우 드물게 성당이나 이슬람사원의 기록에 의해 실제 나이가 확인되기도 하지만 나이를 과장해서 진술하는 경우가 많다. 고령자의 연령은 본인 진술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며 주변사람들이나 출생연대에 있었던 여러 가지 정황들과 대조해 확인해야 한다.
둘째, 도시 발달에 따른 이농현상 때문에 생겨난 인위적인 장수마을의 문제다. 젊은이들은 모두 외지에 돈벌러 나가고 노인들만 남아 장수촌 같이 보이는 경우가 외국에도 많았다. 파키스탄의 훈자나 우루무치의 농촌에서도 이런 현상을 많이 봤다. 진짜 장수촌은 젊은 사람들도 함께 사는 고장이어야 한다.
셋째, 날씨가 좋다는 등의 이유로 노인들이 모여 사는 경우도 있다. 미국의 플로리다나 캘리포니아에는 정년퇴직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많은데 이는 진짜 장수촌이라고 할 수 없다.
필자가 전문가들과 함께 중앙아시아 등지를 돌며 내린 결론은 이렇다. 진짜 장수촌은 그 고장에서 태어나 3대, 4대까지 함께 대가족을 이뤄 외부세계와 깊은 관계를 맺지 않고 자신들만의 독특한 생활양식과 전통을 지키며 사는 고장이다. 이런 장수마을에서도 평균수명은 반드시 높지 않다. 적자생존의 원리에 따라 어릴 때 많이 죽지만 크고 나면 그 고장의 풍토에 맞게 섭생하면서 장수하는 그런 곳을 진짜 장수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허정 서울대 보건대학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