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수 검찰총장이 20일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청사를 나서고 있다. 굳은 표정을 한 채 앞만 보고 똑바로 걸어가는 송 총장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박주일기자
불법 대선자금 수사와 관련해 검찰이 재벌 총수 소환 등 돈을 준 기업 쪽에 초점을 맞추면서 수사방식의 적정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현재 경제계와 법조계 일각에서는 검찰이 불법 대선자금을 모은 정당에 대해서는 압수수색이나 계좌추적 등 본격적인 수사를 하지 못한 채 ‘마지못해 줄 수밖에 없었던’ 기업 쪽의 수사에만 치중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제기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 같은 검찰의 수사 방식으로 기업 활동 위축 및 대외신인도 하락 등 경제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강신호 전경련 회장대행(가운데)이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를 방문, 최병렬 대표(오른쪽)에게 대선자금 수사의 조기 마무리를 위한 협조를 구했다. -연합
그러나 일부 부작용을 감수하고서라도 ‘정경유착’ 등 한국 사회의 고질적 부패 척결을 위해서는 검찰이 이번 기회에 기업과 정치권의 비리 의혹을 더욱 철저하게 파헤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검찰은 앞으로도 비자금 연루 기업에 대한 압수수색과 계좌 추적 재벌 총수 소환 조사 등 수사의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는 방침이어서 수사의 적정성 논란은 더욱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검찰은 불법 대선자금의 윤곽을 조기에 파악하기 위해서는 대선자금에 연루된 기업에 대한 총수 소환과 압수수색 등 파상 공세가 불가피하다며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지난해 대선 당시 음성적으로 전달된 자금을 단기간에 찾아내기 위해서는 그룹 총수 등 기업 책임자에 대한 정공법 수사와 기업 비자금과 대선자금을 잇는 돈줄을 수사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대검 고위 관계자는 “대선 당시에는 엄청난 현금이 기업에서 정당 쪽으로 흘러갔는데 정당 쪽을 조사해 불법 자금을 밝혀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기업 쪽을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안대희(安大熙) 대검 중앙수사부장도 20일 “기업의 비자금이 오히려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는 경제학자들의 견해도 있다”며 “이번 수사가 건전한 경제의 토대를 구축하는 데 긍정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LG홈쇼핑에 대한 전격적인 압수수색과 박삼구(朴三求) 금호그룹 회장에 대한 전격 소환 등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기업 수사가 당분간은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들이 수사에 적극 협조하지 않는 상황에서 조만간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수사의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이 같은 강공법을 구사하는 요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수사범위가 삼성 LG SK 현대차 롯데 등 5대 기업에서, 10대 기업으로, 다시 규모가 더 작은 기업으로 넓어지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특별한 상황 변화가 없는 한 이런 강공 기조는 12월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계=LG홈쇼핑과 금호 등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과 박삼구 금호그룹 회장에 대한 소환조사가 이어지면서 재계는 “검찰이 기업들의 자백을 이끌어내기 위해 무리한 수사를 펼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그럼에도 수사 대상 기업들은 이런 말을 공개적으로 할 경우 자칫 검찰의 신경을 건드려 불이익을 당할 것을 우려해 속으로만 불만을 삭이고 있다.
A기업 관계자는 “검찰이 분명한 혐의가 있는 사실에 대해 조사하는 것은 할 말이 없지만 최근 수사방식이 저인망식으로 진행되면서 기업신뢰도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B기업의 한 핵심관계자는 최근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으나 대선 당시 정치자금에 대해서는 전혀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B사 관계자는 “검찰이 해당 임원의 회사 직책만 보고 무조건 소환조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잇달아 실시되고 있는 압수수색에 대해서도 재계는 반발하고 있다. 압수수색을 당했던 C회사 관계자는 “언론에서 거론되는 혐의 내용과 우리 회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지금까지도 왜 검찰이 압수수색을 했는지 파악하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이 때문에 최근 잇따르고 있는 검찰의 ‘강경 조치’와 관련, 재계를 압박해 빨리 수사성과를 얻으려는 검찰의 수사상 전략으로 파악하는 시각이 많다.
재계 관계자는 “이 같은 전략이 검찰 수사의 효율성을 높일지는 모르겠지만 당사자인 기업으로선 브랜드 가치가 크게 떨어지는 등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다”고 하소연했다.
▽법조계=박삼구 금호그룹 회장 소환조사와 LG 홈쇼핑 압수수색 등을 계기로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 방식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이 법조계 일각에서도 일고 있다.
기업에 대한 수사 못지않게 정당에 대해서도 압수수색과 계좌추적 등 더욱 강도 높은 수사를 해야 경제 피해를 최소화하고 수사결과도 빨리 얻을 수 있다는 게 주된 지적이다.
특수부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정당 쪽을 철저하게 조사하면 기업의 자금 제공 사실은 상당부분 저절로 드러날 수 있다”며 “검찰이 정치권의 힘에 밀려 정당 쪽 수사를 못하면 기업의 피해가 가중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사건 수사팀을 제외한 검찰 내부에서도 “정당 쪽 수사가 진전되면 기업에 대한 조사가 훨씬 수월해질 수 있는데 수사팀이 정치권에 대해 몸을 사리고 있지 않느냐”는 시각이 있다.
특히 검찰이 민주당 계좌의 일부만 추적하고 한나라당 계좌에는 거의 접근하지 못하는 등 정당 조사가 부진해 기업 쪽만 압박하다 보니 기업의 불안감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박 회장에 대한 검찰의 설명이 명쾌하지 않은 점도 이런 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검찰 안팎에서는 정치자금 제공 혐의를 최종 확인하는 단계에서 재벌 총수를 소환한 것으로 관측했으나 검찰 관계자는 “박 회장에 대한 조사에서 비중 있는 사안이 나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법조계 일각에서 수사의 정당성을 수긍하면서도 기업인 소환 남발 등 과잉 조치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특수부 검사 출신으로 검찰자문위원회 위원인 최용석(崔容碩) 변호사는 “비자금 조성과 전달에 관여한 구조조정본부장 등이 범죄에 대한 소명을 충분히 할 경우 최고경영자나 총수 소환은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