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카드 자금난 문제는 20일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LG 지분을 채권단에 추가 제공하겠다는 뜻을 밝힘으로써 일단 돌파구가 마련됐다. 이날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카드 본사 사무실에서는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걱정스러운 듯 대화를 나누었다. -이훈구기자
서울 여의도 ‘LG쌍둥이빌딩’에는 ‘2003년은 1등을 준비하는 해’라는 슬로건이 곳곳에 붙어 있다. ‘정도(正道)경영’으로 ‘만년 2등’이란 딱지를 벗고 1등으로 도약하겠다는 각오를 보여준다.
그러나 대선자금 수사와 LG카드의 자금난이 불거지면서 이런 의지가 흔들리고 있다.
구본무(具本茂) 회장이 갖고 있는 ㈜LG 주식을 모두 담보로 내놓아 LG그룹 경영권까지 위협받고 있다. 대선자금 의혹도 가시지 않고 있어 정도경영에 금이 갈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
그룹 총수인 구 회장이 LG카드의 부실경영에 책임을 지고 개인주식을 담보로 제공키로 해 ‘총수가 사재(私財)를 내놓아 책임지는’ 한국식 부실 해결 전통이 또 한번 반복됐다.
▽LG그룹 경영권 어떻게 되나=LG카드 채권단은 LG카드에 2조원의 자금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구 회장이 갖고 있는 ㈜LG 주식(지분 5.46%)을 담보로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구 회장의 ㈜LG 지분은 20일 현재 시가총액 기준으로 1245억원이다. 2조원에는 훨씬 못 미치는 담보가치이지만 구 회장과 LG그룹이 LG카드 경영정상화에 확실히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LG는 LG그룹의 지주회사로 LG전자·화학·생명과학·생활건강 등 33개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만약 LG카드가 경영정상화에 실패하면 구 회장은 그룹 경영권을 위협받을 수 있다. 이런 위험을 알고 있기 때문에 LG는 “구 회장의 ㈜LG 주식 일부를 담보로 내놓되, 2조원 자금지원용이 아니라 1조원 자본확충(올해 3000억원, 내년 초 7000억원)용으로 하겠다”고 막판까지 버텼다. 그러나 채권단의 자세가 워낙 강경해 결국 수용했다.
물론 LG카드를 부도내는 방법으로 LG그룹을 지키고 구 회장의 ㈜LG 경영권도 유지하는 방법도 있다. 구 회장을 비롯한 ㈜LG 대주주와 LG 계열사들이 LG카드가 발행한 회사채에 대해 보증을 섰거나 담보를 제공한 사실이 없어 이 같은 해법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룹 신뢰도 추락에 따른 충격이 커 LG는 이를 택하지 못했다. LG카드가 발행한 각종 채권에 투자한 일반투자자들이 워낙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련 겹치는 LG=LG카드는 구 회장의 ㈜LG주식 담보제공으로 채권단에서 2조원을 지원받게 돼 일단 급한 불은 끌 수 있게 됐다. 연말까지 1조6000억원을 상환해야 하고 내년 1·4분기(1∼3월)에도 상당한 금액의 만기가 돌아온다. 하지만 이번에 2조원을 지원받는 데다 두 차례에 걸쳐 1조원을 유상증자하게 되면 별문제 없을 것이라는 게 LG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번 긴급수혈에도 불구하고 LG카드가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면 내년 중반 이후에 다시 어려움이 불거질 수도 있다.
한편 LG는 대선자금 문제와 관련해 ‘불법적인 대선자금을 제공한 일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아무런 단서 없이 LG그룹 회장을 출국금지시키겠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또 불법적인 대선자금 제공은 없었더라도 검찰 수사 과정에서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이 드러나면 LG가 어렵게 쌓아 왔던 ‘정도경영’ 이미지는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하나로통신 인수 실패, LG카드 부실, LG홈쇼핑 압수수색, 비자금 의혹과 총수 출국금지 등이 이어지면서 LG그룹이 극복해야 할 시련은 점점 커지고 있다.
홍찬선기자 hcs@donga.com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박현진기자 witn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