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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만나는 시]백석, '寂境'

입력 | 2003-11-21 18:12:00


신살구를 잘도 먹더니 눈 오는 아침

나어린 아내는 첫아들을 낳았다

人家 멀은 山중에

까치는 배나무에 짖는다

컴컴한 부엌에서는 늙은 홀아비의 시아부지가

미역국을 끓인다

그 마을의 외따른 집에서도 산국을 끓인다

-시집 '멧새소리'(미래사)중에서

제 어미 신 살구 먹을 때 태중 아이도 ‘아이 셔!’ 진저리치며 눈을 찡그렸을까? 삼복더위, 서릿발 추위 잘도 참더니 눈 오는 날 골라 오셨구나. 초산에 나 어린 아내 꽤나 황망했으련만 적경(寂境)이라니 무던한 순산이었나 보다. 홀시아비 정짓간 들어가는 걸 보니 산파도, 신랑도 없이 어려운 고비 넘기셨어.

그 까치 참 영물일세. 이 세상 오는 첫손님 알고 반가이 짖는구나. 용해라. 다른 나무도 아닌 배나무에서 짖다니. 오늘 손님은 사립문 밖에서 아니 오고, 안방 어미 배 타고 오는 줄 이미 알고 있었네.

홀시아비 미역국 끓일 동안, 지아비는 글쎄 어디로 갔나? 산 너머 재 너머 장에나 갔으면 다행이지만서도 현해탄 건너 징용 갔으면 저 붉은 아들 언제 보나. 까치야, 마저 짖어라. 지아비 어서 돌아와 오두막 사립문에 숯이랑 고추랑 신명나게 금줄 걸도록.

반칠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