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이달 들어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들을 비롯한 친노(親盧) 인사들과 잇따라 청와대에서 비공개 회동을 갖는 등 정치권 인사들과의 접촉을 재개했다.
민주당이 분당(分黨)으로 치닫던 7월 이후 “민주당 문제에 개입했다는 오해를 받지 않겠다”며 정치인 면담을 피해 왔던 만큼 노 대통령의 이 같은 행보에 대해 내년 총선을 겨냥한 정치 행보가 본격화된 것이라는 관측이 무성하다.
노 대통령은 이달 5일 이강철(李康哲) 우리당 상임중앙위원과 조찬회동을, 10일에는 부산지역의 측근 인사 7명과 만찬회동을 가졌다. 이어 14일에는 우리당 소속 초선 의원 7명과, 18일에는 김원기(金元基) 우리당 공동의장과 각각 만찬을 했다.
유인태(柳寅泰)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은 “민주당 분당으로 다들 거취가 정해진 만큼 이제는 못 만날 이유가 없지 않느냐”며 “서로 힘내자는 격려의 자리였고 무슨 구상이 오간 것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14일 저녁 김부겸(金富謙) 정장선(鄭長善) 김영춘(金榮春) 송영길(宋永吉) 의원 등 초선 의원들과 노 대통령의 회동에서 의원들은 “이대로 가서는 청와대가 중심을 잡기 어렵다”면서 청와대 참모진 개편과 노 대통령의 우리당 조기 입당을 건의했다고 한다. 회동은 고량주를 반주로 곁들여 2시간반 동안 진행됐고 자연스럽게 내년 총선 전략에 관한 의견도 오갔다는 후문. 이에 노 대통령은 “입당 문제는 대선자금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 수 있으니 시간을 달라”고 말했고 참모진 개편에 대해서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 연말까지 기다려 달라”고 답변했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한편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최근 잇따른 노 대통령의 친노 인사 면담, 사회 각계 인사 초청 모임, 지방 방문 등의 행보가 내년 총선을 겨냥한 사전 선거운동의 일환이라고 공격에 나섰다.
한나라당 이재오(李在五) 사무총장은 21일 기자간담회에서 “부안사태, 농민시위 등으로 사회가 무너지고 있는 데도 대통령이 출신지역 인사를 만나고 청와대에 이사람 저사람 불러 사전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며 “당 차원에서 사전 선거운동인지 법률 검토를 한 후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박진(朴振) 대변인은 “국가 최고지도자인 대통령이 오로지 사전 선거운동에 골몰하고 있다”며 총선용 행보 중단을 촉구했고 김기현(金起炫) 부대변인은 “현직 대통령이 부산의 측근들을 만난 것은 비밀리에 선거대책회의를 주재한 것으로 정치 불개입 약속을 깬 것”이라고 비난했다.
민주당 김재두(金在斗) 부대변인도 이날 논평을 통해 “산적한 국정 현안을 팽개치고 신당띄우기와 내년 총선 챙기기에만 몰두하는 것은 대통령인지, 신당 총재인지 구분조차 못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공격했다.
이에 대해 윤태영(尹太瀛) 청와대 대변인은 “가까운 정치인들을 위로 또는 인사차 만난 것일 뿐 정치적 의도는 없다”고 해명하고 각계 인사 초청 모임과 관련해서는 “대통령은 참모와 장관만 만나라는 거냐”고 반박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