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人權)의 개념이 없었던 고대사회에서 빚에 대한 책임은 무한대였다.
고조선 그리스 로마 고대중국의 역사자료를 보면 빚을 갚지 않는 사람은 채권자의 노예로 전락했다. 빚의 굴레는 죽음으로도 벗어날 수 없었다. 노예라는 신분이 자자손손 세습됐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기본가치로 하는 현대 사회에서 빚의 책임은 제한적이다. 예외적으로 노예제와 유사한 인신매매를 통해 빚을 받아내는 조직폭력배들도 있기는 하다.
물론 현대사회 최대의 채권자인 금융기관들은 조폭이 아니기 때문에 원금에 이자를 덧붙이는 일 외에 채무자를 압박할 수단이 별로 없다. 이로 인해 재벌그룹의 신용카드사가 부도위기에 몰리고 있다.
정부 권유 등을 고려하여 금융기관들은 최근 원금과 이자의 일부를 탕감해주는 신용회복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이 제도가 잘 작동하면 채권자와 채무자가 모두 이익을 보는 ‘윈윈 게임’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금융기관에서 빚 받아내는 일(채권추심)을 담당하는 직원들은 요즘 죽을 맛이라고 한다. “버티면 탕감해 준다는데 뭐 하러 갚느냐”는 배짱과 “지난번에 갚은 빚을 돌려 달라”는 억지가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채무자가 진 빚은 채무자가 갚아야 한다’는 초보적 경제원칙은 60년대 이후 최근까지 여러 차례 무너졌었다.
농가부채의 주기적 누적과 탕감, 공적자금투입을 통한 은행부실 해소 등이 대표적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채무자를 자임하며 경제원칙을 수시로 무너뜨렸다.
현명한(?) 채무자들은 신용불량자 350만명 사태 앞에서 정부가 대신 갚아줄 것으로 기대했다. 예상대로 정부는 8월 25일 원리금 감면과 만기연장을 담은 ‘신용불량자 지원대책’을 내놓았다.
캐나다의 법 경제학자 마이클 트레빌 콕 교수는 ‘계약자유의 한계’란 저서에서 “채무 이행을 보장하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외상거래가 발생할 수 없고 재산권의 개념도 사라진다”고 지적했다. 빚을 갚지 않는 사회에선 시장경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350만명의 신용불량자를 경제 원칙대로 모두 파산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신용불량사태는 채무자 본인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지만 정부와 해당 금융기관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정의(正義)만 내세울 상황이 아니라는 얘기다.
다만 신용회복 지원제도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우선 정부가 나서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의 신용불량자 대책은 ‘채권자와 채무자간 자발적인 절충’보다는 ‘관의 강력한 유도를 동반한 선심성 부채 탕감’으로 흐를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당사자 처리 원칙에 따라 금융기관에 전적으로 맡겨야 한다.
금융기관도 빚을 갚으려는 의지가 있는 채무자만 지원해야 한다.
이 같은 조건이 지켜지지 않으면 신용회복 프로그램은 은행 부실을 키우고 궁극적으로 빚 안지고 성실히 살았던 일반 국민들을 바보로 만드는 경제적 불의(不義)만 낳을 것이다.
임규진기자 mhjh2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