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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포석 人事의 세계]관료사회-정보통신부

입력 | 2003-11-23 18:46:00

진대제 장관 취임 2주 후인 올 3월 14일 열린 ‘업무혁신을 위한 정책토론회’에 참석한 정보통신부 공무원들. 정통부에서는 진 장관 취임 후 업무능력 위주의 인사가 정착되면서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사진제공 정보통신부


우정(郵政) 업무가 하는 일의 대부분이던 체신부가 정보통신부로 새로이 출발한 것이 1994년 12월. 무선호출기(삐삐), 휴대전화, 시티폰, PCS, 초고속인터넷 등 정보통신사업이 ‘황금 알을 낳는 거위’로 떠오르면서 그 인허가권을 갖고 있는 정통부의 위상도 한순간에 변했다.

“우체국 가기 싫다”며 지원을 기피했던 행정고시 성적 우수자들이 대거 정통부로 몰리기 시작했다. 체신부 시절 간부직은 거의가 7, 9급 출신이었으나 현재 정통부 3급 이상 35명 중 행시 출신이 25명으로, 체신부 하위직에서 출발한 간부들은 점차 밀리고 있는 추세다.

행시 출신은 체신부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사람들과 타 부처에서 중도에 이적해 온 사람들로 인맥이 나뉜다. 배순훈(裵洵勳) 남궁석(南宮晳) 이상철(李相哲) 전 장관과 진대제(陳大濟) 현 장관 등 민간 정보기술(IT) 기업 사장 출신들이 잇따라 장관으로 오면서 정통부의 분위기 자체가 경쟁시스템으로 바뀌다 보니, 이들 인맥간에는 치열한 실력 대결이 벌어지고 있다.

굳이 따지자면 타 부처 출신들이 좀 더 잘나가고 있는 것이 정통부의 현 상황이다. 그중에서도 노준형(盧俊亨) 기획관리실장, 양준철(梁俊喆) 국제협력관, 유영환(柳英煥) 정보통신정책국장 등 옛 경제기획원 출신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기획예산담당관 정보보호기획과장 등 요직을 두루 걸친 고광섭(高光燮) 공보관은 고시 출신은 아니지만, 인맥으로는 경제기획원 계열로 분류된다.

노 실장은 94년 기획총괄과장으로 있으면서 초고속 인터넷 도입을 주도했다. 양 협력관은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의 보좌관 등을 지낸 뒤 지난해 정보보호심의관으로 정통부에 합류했으며 인터넷 내용 등급제 도입, 스팸메일 처벌 등 인터넷 이용자 보호 업무를 처리해 왔다. 유 국장은 96년 정보화제도과장으로 정통부에 온 뒤 5년여 동안 정보화 관련 업무를 맡아온 IT통.

체신부파로는 석호익(石鎬益) 정보화기획실장, 김동수(金東洙) 정보통신진흥국장, 유필계(柳必啓) 전파방송관리국장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석 실장은 83년 사무관 시절 전기통신기본법 제정 실무를 맡아 일찍이 IT업무를 시작했다. 2000년에는 정보통신지원국장으로 있으면서 차세대이동통신(IMT-2000) 사업자 선정을 주도했다. 충주우체국장 출신인 김 국장도 94년 정보통신지원국 통신업무과장을 시작으로 줄곧 IT업무를 맡아 왔다. 정책총괄과장, 공보관 등을 거친 유 국장은 최근 디지털TV방송 전송방식을 놓고 유럽식을 주장하는 방송사들에 맞서 미국식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정통부 주요 보직은 감사관 공보관을 제외하면 기술고시나 특채 등을 통해 들어온 기술직에 대해서도 원칙적으로 개방돼 있다. 그러나 기술고시 16회 출신인 신용섭(申容燮) 정보보호심의관을 제외한 10개 실국장이 모두 행정직으로 채워져 있다. 정통부에서조차 이공계가 홀대받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지만 이재홍(李哉鴻) 방송위성과장 등 국장 진급을 눈앞에 둔 기술직 출신이 상당수여서 2, 3년 후에는 분위기가 바뀔 것이란 설명이다.

또 한 가지 뚜렷이 눈에 띄는 현상은 진 장관 취임 이후 ‘업무능력 우선주의’가 팽배하면서 연공서열이 급격히 퇴색하고 있다는 점. 진 장관은 퇴직을 앞둔 간부들이 쉬었다 가는 자리였던 지방체신청장 자리 8곳 중 2곳을 제외한 6곳에 40대 후반∼50대 초반의 젊은 행시 출신들을 기용했다. 진 장관은 또 역대로 공무원 출신이 거쳐 간 우정사업본부 우편사업 단장에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물류공학 박사 출신인 LG홈쇼핑 박재규(朴載圭) 상무를 전격 발탁했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정통부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학위 열풍이 불고 있다. 국장급 간부 중 석호익 실장(성균관대 행정학 박사), 유필계 국장(한양대 경영학 박사) 등 10여명이 박사학위 소지자다. 현재 대학원에 다니는 간부도 10여명에 이른다.

고 공보관은 “경쟁이 심해짐에 따라 노력도 많이 해야 하지만, 노력을 하는 만큼 기회도 많아진다는 점에서 대부분은 지금의 풍토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첨단을 달리는 부처답게, 정통부는 매주 수요일을 ‘가정의 날’로 지정해 오후 6시 이후에는 무조건 퇴근하도록 독려하는 등 직원들의 가정생활도 배려하고 있다.

나성엽기자 cp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