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천 한림대 교수·언론학 한나라당은 17일 KBS 수신료 분리징수를 골자로 한 방송법 개정안을 이번 정기국회 회기 내에 본회의에서 처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만약 한나라당의 방침대로 이 방송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다면 KBS는 경영이 어렵게 될 것은 물론 공영의 틀도 유지하기 힘들게 될 것이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분리징수’ 왜 나왔나 살펴야 ▼
첫째, 수신료를 분리 징수할 경우 KBS의 재정은 크게 취약해진다. 수신료 징수율이 대폭 낮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현행 전기료 통합고지제도가 시행되기 전해인 1993년도 징수율이 52.6%(2022억원)에 지나지 않았던 경험에 견주어 볼 때 그러하다. 당시 징수비용만 전체 징수액의 35.5%였다. 실제 가용액은 약 1300억원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징수의 효율성을 높이고 경영을 개선하는 자구노력을 한다고 할지라도 KBS의 경영은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둘째, 수신료 징수율이 낮아지면 도리 없이 1TV도 광고방송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현재도 KBS 예산의 54% 정도를 광고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광고의존도가 더 높아진다는 것 자체가 공영성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그렇다면 수신료 분리징수가 초래할 공영방송 KBS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수신료 분리징수의 명분을 없애는 길뿐이다. 다시 말해 공영방송 본연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수신료는 상업방송이 제공할 수 없는 질 높은 저널리즘과 공공서비스 형태의 프로그램, 그리고 양질의 대중적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대가로 시청자들로부터 징수하는 특별 부담금이다. 그런 만큼 KBS는 수신료 분리징수론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까닭이 무엇인지를 먼저 자성해야 한다.
수신료 분리징수를 거론하는 것을 두고 한나라당이 총선을 앞두고 방송을 길들이려는 당파적 이해 때문이라거나 KBS를 상업방송화하려는 음모, 또는 수구 반동세력의 ‘KBS 죽이기’라고 몰고 갈 일만은 아니다. 수신료의 성격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란하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바로 보는 것이라 할 수 없다.
공영방송이 준수해야 할 기본원칙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원칙은 독립성과 공정성이다. 이 두 가지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한 공영방송의 공익성은 보장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원칙을 준수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그것은 공영방송의 탈정치화다. 공영방송은 정치세력, 압력단체 및 광고주나 노동조합과 같은 특정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만 한다. 그렇지 아니하고 오히려 정치적 지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잣대로 재단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방송하는 한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은 훼손되고 만다. 아무리 방송이 정신적 가치를 제시한다 할지라도 교회의 위치로까지 부상하려 해선 안 된다.
또한 공영방송의 저널리즘은 특히 정치적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키거나 공공정책과 중대한 관련이 있는 사안에 대해 공정하고 정확해야 된다는 것, 공정성은 개별 프로그램에서만이 아니라 일련의 프로그램을 포함해 방송의 전체적 맥락에서도 관철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원칙들에 견주어 볼 때 노무현 정부 하의 KBS가 탈정치적 입장을 견지하면서 독립성과 공정성을 지켜 왔다고 말할 수 있는지를 KBS 구성원들은 진솔하게 반성해보아야 한다. 수신료 분리징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는 거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정치색 탈피 스스로 거듭나길 ▼
끝으로 한나라당과 국회도 영국의 의회주의적 전통이 근시안적이고 조령모개식의 정책 결정을 배제하고 보다 점진적인 방식으로 방송의 공공성을 드높이는 데 일정하게 기여해 왔다는 점을 참고해 주었으면 한다. 수신료 분리징수가 한번 결정되면 다시 통합징수로 돌아가기는 매우 힘들게 된다. 빈대가 밉다고 공영방송이라는 초가삼간을 태워버리는 잘못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보다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근본대책을 심도 있게 연구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원려(遠慮)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유재천 한림대 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