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특검법 거부시 강경 대응 방침을 밝힌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오른쪽)가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특검법안 가두 홍보전을 벌였다. -국회사진기자단
한나라당 최병렬(崔秉烈) 대표가 23일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 법안에 대해 ‘재의(再議) 거부’라는 초강수를 던졌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거부권을 던질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둔 승부수다.
최 대표의 강공 선회는 일단 노 대통령이 특검법을 수용토록 하려는 압박카드의 성격이 짙다.
여기에다 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따라 국회로 넘어올 재의 요구를 한나라당이 수용할 경우 결국 정국주도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최 대표를 강공으로 이끈 동인(動因)이 됐다. 특히 한나라당측은 ‘거부권 행사에 따른 정치적 파장을 모를 리 없는 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이미 재의 표결을 뒤집을 표 계산을 끝냈다는 얘기’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당의 한 고위관계자는 최근 기자와 만나 “청와대가 재의결의 열쇠를 쥔 민주당 일부 중진들을 포섭하려는 여러 징후를 포착했다”며 “따라서 대여(對與) 전면 투쟁이라는 강공으로 노 대통령을 압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 대표가 이날 “민주당과 자민련이 특검 수용을 촉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 대통령이 특검 법안을 거부한다면 야당 의원들을 협박해 반대 표쪽으로 빼내 가겠다는 정치공작을 하려는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여기엔 10일 특검 법안의 국회 통과 이후 불거진 돌출변수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우선 28일로 예정된 민주당의 당 대표 경선이 재의 표결에 미칠 파장이 만만치 않다.
당 대표 경선주자 중 특검 수사를 지지하는 조순형(趙舜衡) 의원과 달리 추미애(秋美愛) 의원은 특검 재의 표결에 대해 유보적 입장이어서 추 의원이 당선될 경우 재의 표결 전망은 어두워 질 수밖에 없다. 당 대표 경선 분위기가 달아오른 민주당내에서 특검 법안 재의 표결에 대한 긴장도가 떨어질 것이라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21일 국회에서 ‘신행정수도건설 특위 구성안’이 부결된 뒤 자민련과 한나라당 내 충청권 의원들이 한나라당 지도부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점이나 특검 법안 재의가 무기명(無記名) 투표로 진행돼 반란표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점도 최 대표에겐 부담이다.
이뿐 아니다. 최 대표는 24일 긴급 의원총회에서 의원직 총사퇴 등 투쟁 방식을 공론화할 태세지만 당내 이견 조율도 ‘넘어야할 산’이다.
서청원(徐淸源) 전 대표 등 중진들은 최 대표의 강경 투쟁 방식에 공감을 표시했지만 “특검 거부시 투쟁해야 하지만 지금 국면은 재의결에 당력을 모을 때”라고 반발하고 있는 남경필(南景弼) 의원 등 소장파들에 대한 설득이 만만치 않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