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님 집값 좀 그만 떨어뜨려 주세요.”
며칠 전 한 독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최근 연이어 보도한 집값 하락 기사에 대한 항의 전화겠거니 생각하고 대충 끊으려 했지만 저쪽의 목소리가 워낙 절박해 보였다.
“30년간 어렵사리 모은 돈으로 올 5월에 강남의 한 재건축 아파트를 샀어요. 6억원에 샀는데 지금 4억원이래요. 3억원을 융자받았는데 앉아서 2억원을 밑졌어요.”(독자)
“상투를 잡으셨네요. 정부가 앞으로 투기수요를 엄격히 규제한다고 했으니 자금여력이 없으시면 서둘러 팔아야 할 텐데요.”(기자)
“은행 빚 갚고 나면 1억원 남아요. 평생 모은 돈이 하루아침에 3분의 1로 줄었어요. 정부가 서민들 위해 정책을 내놓았다더니 서민을 잡아요, 잡아.”(독자)
“재건축에 억대 투자를 하시는 분이 어떻게 서민입니까?”(기자)
“강남에 있는 아파트에 한번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친 게 무슨 죄입니까. 있는 사람들이야 집값이 좀 떨어져도 상관없을지 모르지만 우리들은 다달이 나가는 은행이자만 100만원이 넘습니다. 집값이 정도껏 떨어져야지요. 이건 완전히 깡통계좌 수준입니다. 제발 부탁입니다.”(독자)
전화를 끊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물론 이분의 말씀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이런 분보다는 집값 오름세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국민이 월등히 많다. 그래서 ‘집값은 반드시 안정돼야 한다’는 강력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정책으로 인해 집값이 떨어지면 어렵사리 강남에 내 집을 마련한 사람들이 큰 피해를 본다는 점도 여전히 사실이다. 강남에 처음 내 집을 마련하는 사람들은 집값의 상당 비율을 대출로 충당하고 그것도 모자라 전세를 끼고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실수요와 가수요의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이런 사람들의 고통과 상실감도 쓰다듬어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런 분들은 희생되어 마땅한 계층은 아니지 않은가.
김창원기자 cha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