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4연승을 달린 전자랜드의 유재학 감독에게 요즘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기분 좋다”는 대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막상 돌아온 대답은 “작년 7연패 끝에 1승을 올렸을 때 라커룸에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어요”였다. 프로농구 감독에게 연패의 악몽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이해되는 대목이다.
열악한 환경의 한국 프로농구 감독은 승리를 위해 참 여러 가지 역할을 해내야 한다. 보는 이가 짜증날 정도로 경기 내내 심판에게 삿대질을 해가며 신경전을 벌이는 것도 이기기 위한 역할이다. 선수 대신 심판과 싸울 때도 있다.
감독은 선수와 함께 먹고 자고 뒹굴면서 1년의 절반 이상을 보낸다. 경기가 2, 3일 없는 경우에 선수들에게는 휴가를 주지만 연패에 빠진 감독은 숙소에 틀어박혀 다음 경기에 대한 고통스러운 궁리를 할 뿐이다. 집에 가면 가족에게 똑같은 스트레스를 나눠주는 것 같아서다.
감독은 연패를 했다고 선수들을 심하게 나무라지 않는다. 혹 기가 죽어 더 안 좋은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 결국 혼자 고통을 삭여야 하는 게 감독이다.
3연패에 빠지면 밥도 넘어가지 않는다. 수저를 들어도 속에서 쓴 물만 올라올 뿐이다. 그런데 연패에 시달리던 어느 감독이 가만히 보니까 자신만 먹질 못하고 있지, 선수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잘도 먹더란다. 순간 ‘이 아이들은 속도 없나, 아니 속도 참 좋다’하며 서운해 했다가 이내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는 것. 이들은 어제의 패배를 잊고 잘 먹고 다음 경기에서 잘 뛰어야 할 선수이기 때문에….
지난해 성적 부진으로 물러나야 했던 모 감독. 연패의 고통을 생각하면 다시는 감독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물론 배운 것이 농구이고 승부세계의 비정함보다는 짜릿한 기억이 더 강하기에 새로 감독 제의가 오면 덥석 받아들일 것이 뻔하다고 본인도 얘기했지만, 단서는 붙였다. ‘서장훈이나 김주성, 이상민이나 김승현 중 한 명이라도 있는 팀이어야 한다’고.
정치인들은 선거가 끝나면 낙선자는 물론이고 당선자 역시 한순간 유권자를 미워하게 된다고 한다. 결국 당선시켜줄 걸 왜 이렇게 힘들고 애를 태우게 했을까 하는 원망에서란다.
연패의 늪을 빠져나온 감독 역시 겉으로는 선수들의 머리를 쓰다듬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잘하는데, 이렇게 이길 수 있는데 그동안은 왜 헤맸을까’라고 원망하지 않을까.
방송인 hansunkyo@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