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민타자’ 이승엽이 미국 진출을 꾀하면서 겪고 있는 고충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 참 많이 바뀌었다는 느낌이 든다.
먼저 옛날 얘기부터 해보자. ‘무쇠팔’ 최동원은 8910만원에서 단돈 90만원 올리려고 88년 재계약을 않은 채 선수생명과 직결되는 임의탈퇴까지 불사하며 롯데와 혈투를 벌였다.
‘국보급 투수’ 선동렬은 또 어땠는가. 그는 87년 전년도보다 300%가 인상되긴 했지만 요즘으로 치면 별것도 아닌 6000만원에 1이닝당 12만원 같은 자잘한 옵션 몇 개 붙이려다 해태로부터 임의탈퇴 통보를 받는 수모를 감수해야 했다.
선동렬의 눈이 더욱 뒤집힌 것은 85년부터 95년까지 11년을 최고투수로 군림하면서 받은 연봉 총액이 8억9000만원에 불과했던 것. 이는 올해 이승엽의 연봉인 6억3000만원을 겨우 넘긴 액수다.
이처럼 국내 프로야구가 돈 보따리를 제대로 풀지 않던 즈음인 94년 박찬호가 LA다저스에 전격 입단하면서 한국인 유망주의 해외진출 러시가 일기 시작했다.
여기엔 경제의 논리가 숨어있었던 게 사실. 그동안 메이저리그 승격은 꿈도 꿔보지 못한 채 이슬처럼 사라진 선수들도 계약금으로만 100만달러(약 12억원) 전후의 거금을 챙겼다. 또 아메리칸 드림을 일군 선수들은 재벌 부럽지 않은 행운을 누렸다. 박찬호는 5년간 7000만달러(약 840억원)에 이르는 대박을 터뜨렸고 김병현도 올해 325만달러(약 39억원)에 이어 내년부터는 500만달러 시대를 열 전망이다.
그러나 이젠 이도 ‘남의 떡’이 됐다. 미국에서도 동양인 열풍이 한 꺼풀 벗겨지자 지난해 메이저리그 포스팅시스템에 참가했던 임창용은 65만달러, 진필중은 고작 2만5000달러에 낙찰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승엽도 구체적인 입단 조건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만족할 만한 액수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올 겨울 자유계약선수가 되는 이승엽은 국내에 잔류한다면 4년간 60억원은 너끈하다. 이는 메이저리그에서 뛸 경우 고액의 세금에 에이전트 비용, 체제비, 물가 등을 감안하면 1000만달러에 가까운 효과. 또 일본으로 갈 경우 받게 될 돈에 비해서도 결코 적지는 않아 보인다.
돈은 전부는 아니지만 인생의 중요한 부분. 명예와 실리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이승엽은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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