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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포츠]손맛으로 월척 낚지요…시각장애인 강원선씨

입력 | 2003-11-25 17:43:00

고등어 미끼를 단 낚시대를 들고 있는 강원선씨. 그는 시각장애인이지만 특수한 감각으로 잡기 어려운 어종을 척척 낚아내 제주도에서는 낚시도사로 통한다. 서귀포=원진열씨


그의 낚시대에는 찌가 없다. 대신 낚시줄을 통해 전해오는 미세한 움직임만으로 고기를 낚는다.

시각장애인협회 서귀포 지회장인 강원선씨(53). 그는 앞을 보지 못하지만 ‘바다낚시의 천국’ 제주도에서 소문난 낚시도사다. 내로라하는 낚시꾼들도 좀처럼 잡기 힘들다는 다금바리와 돌돔을 매일 4마리 이상 잡아 올린다.

서귀포 서귀동에서 운명철학관을 운영하는 그는 요즘 해가 진 뒤 낚시에 나선다. 부인 원진열씨(51)가 모는 오토바이를 타고 집 근처 갯바위를 찾는다. 대물을 잡으려면 배를 타야 하지만 비용도 많이 들고 번거로워 밤낚시를 주로 한다. 서귀포 인근에서 그가 아는 낚시 포인트만 수십 군데.

“태풍이 올 때나 아주 추울 때가 아니면 대개 나갑니다. 보지 못하는 대신 다른 감각이 뛰어나기 때문에 빈손으로 돌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지요.”

그가 고기를 낚는 방법은 신기할 정도다. 바위틈에 숨어사는 다금바리와 돌돔을 잡기 위해 100m 이상 바다 밑바닥까지 낚시줄을 드리운 뒤 고기가 미끼를 건드리면서 전해오는 미세한 떨림을 감지해 걸어 올린다. 낚시줄과 초릿대를 통해 손끝에 전해오는 이런 움직임을 보통사람이 감지해 내기는 불가능하다.

강씨는 고등어와 정어리를 미끼로 쓴다. 미끼를 다는 것이나 낚시줄 묶는 일은 스스로 할 수 있지만 위험한 갯바위에서 낚시를 하다보니 부인이 항상 옆에 있어야 한다. 매일 잡아 올린 다금바리나 돌돔은 집에서 먹기도 하고 1kg 당 수 만원씩 근처 음식점에 팔아 챙기는 수입도 짭짤하다.

그의 조력은 30년째. 16살 때 갑자기 시력을 잃었다. 병원에서도 이유를 몰랐다. 낚시는 그를 방황과 좌절에서 구해냈다. 낚시대를 잡으면서 정신적 안정을 찾았고 부인을 만나 단란한 가정도 꾸리게 됐다.

“고기를 잡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일단 낚시대를 바다에 담그고 있으면 마음의 문이 열립니다. 낚시를 하면서 다른 사람 목소리만 들어도 그 사람을 파악할 수 있게 됐습니다.” 강씨는 “내년에는 200여명의 서귀포 시각장애인협회 회원들이 참가하는 바다낚시대회를 여는 등 장애인들을 위한 낚시보급에 앞장 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권순일기자 stt7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