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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흐르는 한자]捲 土 重 來(권토중래)

입력 | 2003-11-27 18:08:00


捲 土 重 來(권토중래)

捲-말 권 爭-다툴 쟁 網-그물 망

拔-뽑을 발 蓋-덮을 개 恥-부끄러울 치

亂世(난세)가 英雄을 부르는 법. 기원전 206년, 秦(진)이 망하자 천하는 無主空山(무주공산)이 되었다. 이 때 두 英雄豪傑(영웅호걸)이 나타나 천하를 다투었으니 項羽(항우)와 劉邦(유방)의 楚漢之爭(초한지쟁)이 그것이다. 한 편의 장엄한 大敍事劇(대서사극)으로 일컬어질 만큼 감동적인 장면도 많은데 그 중 四面楚歌(사면초가)는 가히 壓卷(압권)이라 하겠다. 쫓기던 項羽는 垓下(해하·현 安徽省 靈壁縣 東南)에서 大敗(대패)하고 만다(기원전 202년).

가까스로 包圍網(포위망)을 뚫고 도망쳐 나왔을 때는 고작 28명의 부하들만 남았다. 패잔병을 이끌고 烏江(오강·현 安徽省 和縣)에 이르자 亭長(정장·지금의 면장에 해당)이 배를 저어 와 말했다.

“빨리 타십시오. 江東 땅이 비록 작기는 하나 沃土(옥토)가 천리요 백성이 수십 만으로 다시금 覇業(패업)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項羽는 그의 好意(호의)를 거절했다.

“하늘이 나를 망하게 했거늘 강을 건넌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리고 옛날 江東의 子弟(자제) 8000명으로 이 강을 건넜는데 나 혼자 살아 돌아간다면 무슨 면목으로 그들의 부모를 뵌단 말인가.”

하고는 그 자리에서 목을 베 자결하고 말았다. 그의 나이 31세 때의 일이다. 한때 ‘力拔山, 氣蓋世(역발산 기개세·힘은 산을 뽑고 기세는 천하를 뒤덮을 만 함)“를 자랑하던 項羽였지만 최후의 모습은 이처럼 비참하기 그지없다.

그 뒤 1000년이 지나 唐(당)의 시인 杜牧(두목·803-852)이 烏江을 찾았다. 천하 대장군 項羽의 비참한 최후에 누군들 감회가 없겠는가. 그 역시 烏江의 亭子에 ‘題烏江亭’(제오강정·오강정을 노래함)이라는 시 한 수를 남겼다.

勝敗兵家不可期(승패병가불가기)-승패는 병가도 알 수 없는 법,

包羞忍恥是男兒(포수인치시남아)-수치를 참는 자가 진정한 남아.

江東子弟多英俊(강동자제다영준)-강동의 자제 중엔 인걸이 많았거늘,

捲土重來未可知(권토중래미가지)-그 누가 알랴 권토중래를.

項羽를 同情(동정)해서일까. 杜牧의 눈에는 한 때 천하를 호령했던 영웅이 31세의 아까운 나이로 비참한 最後(최후)를 맞이했다는데 대해 애석함을 금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여기서 捲土重來는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온다’는 뜻으로 ‘실패한 사람이 새로운 각오로 또 다시 세력을 만회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