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주기자 zoo@donga.com
한국 역사학계에서 서양 중세사 연구층은 두껍지 않다. 한국사나 서양의 근현대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요’가 적기 때문이다.
‘로마제국 사라지고 마르탱 게르 귀향하다’(푸른역사)는 ‘사극(史劇) 제대로 보기’를 위한 고급스러운 안내서이자 서양 중세사의 이해를 돕는 역사 대중서이다.
저자는 독일 파사우대에서 중세 교회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차용구 중앙대 사학과 교수(40·사진).
“중세는 5세기부터 16세기까지 1000년간 존속한 역사입니다. 또 서양문명의 핵심을 이루는 기독교가 뿌리내린 시기이기도 하고요. 중세사를 빼놓고는 서양문명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차 교수는 이 책에서 모두 10편의 영화를 시대 순으로 소개했다. ‘로마제국의 멸망’과 ‘검투사 아틸라’는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가는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장미의 이름’ ‘아이반호’ ‘노트르담의 꼽추’에서는 본격적인 중세사가 펼쳐지고 ‘메세지’와 ‘엘시드’는 중세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온 이슬람문명과의 조우(遭遇)를 다뤘다. ‘잔다르크’ ‘1492 콜럼버스’ ‘마르탱 게르의 귀향’은 근대로의 이행기를 그린 영화다.
저자는 영화의 줄거리를 소개한 뒤 영화의 역사적, 사상사적 맥락을 짚어주고 사실과 허구를 구분해 놓았다.
‘마르탱 게르의 귀향’의 무대는 16세기 초반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 이 시기 프랑스 남부의 촌락에도 프로테스탄티즘이 깊숙이 침투해 있었다는 역사적 지식이 없다면 여주인공 베르트랑드가 남편이 아닌 남자와 관계를 맺기 전 십자가를 치우는 장면을 그냥 지나치기 쉽다.
이는 베르트랑드가 새로운 삶을 정당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신교에 관심을 갖게 됐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역사를 알면 영화를 비판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장악하고 있는 할리우드 영화들은 이슬람교에 대해 잘못된 고정관념을 퍼뜨리는 주범이라고 생각해요. 영화 ‘엘시드’는 이슬람교도들을 범죄집단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사 100년 중 마호메트를 다룬 영화는 ‘메세지’가 유일하죠.”
차 교수는 “이성의 힘을 회의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서는 종교나 신화와 같은 중세의 뿌리에 관심이 많다”며 “그런 점에서 에코가 지적했듯이 21세기는 ‘새로운 중세’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