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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교실][문학예술]'마당을…' 갈등…왕따…'암탉의 일생'

입력 | 2003-11-28 17:30:00


◇마당을 나온 암탉/황선미 지음/198쪽 8500원 사계절

소설 읽기는 간접체험을 넓히는 것 이상이다. 좋은 소설은 빙의(憑依) 체험과 같다. 독자는 귀신 씌듯 작중 인물이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을 마치 자신이 그 사람인 양 생생하게 겪게 된다는 뜻이다.

이해의 폭은 경험의 폭과 같다. 망해 본 사람만이 실패자의 아픔을 알 수 있고 버림받아 본 사람만이 남의 실연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소설은 공감(共感)을 키우는 재료이다. 부모와 갈등을 겪는 아이에게 김정현의 ‘아버지’는 아비가 되어 보는 경험을, 짓궂은 아이에게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왕따 학생의 고통을 피해자 입장에서 느끼게 한다. 오늘 소개할 ‘마당을 나온 암탉’에는 이러한 ‘공감 독서’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주인공 ‘잎싹’은 알을 얻기 위해 사육되는 암탉이다. 어미닭에게 알이란 새 생명의 씨앗이다. 하지만 농장 주인에게는 한갓 상품에 지나지 않는다. 좌절한 잎싹은 모이 먹기를 거부한다. 마르고 부실해진 그는 이내 폐계(廢鷄) 무덤에 버려지고 만다.

우여곡절 끝에 살아나 농장 마당으로 돌아오지만 그곳은 축사(畜舍) 안에서 바라보던 자유의 공간이 아니었다. 오리 떼와 늙은 개, 그리고 우두머리인 ‘관상용’ 수탉 부부는 텃세를 부린다. 그를 배려하는 동물이라고는 마찬가지로 이방인인 청둥오리뿐이다. ‘볏을 가진 족속’에 대한 수탉의 알량한 배려로 겨우 머무르게 되지만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잎싹은 결국 마당 밖으로 내몰린다. 그러나 마당을 벗어나고 나서야 잎싹은 자신이 자유임을 깨닫게 된다. 드넓은 야생에는 텃세도 갈등도 없었던 것이다.

몸이 망가진 잎싹은 알을 낳을 수 없었다. 그러나 친구인 청둥오리의 알을 대신 품어 새끼를 얻는다. 암탉 엄마를 둔 아기 청둥오리는 편견과 고난에 시달리지만 결국 이겨내고 겨울이 오자 자기 무리들을 따라 먼 곳으로 떠난다. 잎싹도 족제비에게 목숨을 잃는다. 하지만 자신이 족제비 새끼들을 위한 먹잇감이 된다는 ‘어미의 마음’으로 잎싹은 편안히 눈을 감는다.

‘마당을…’을 읽으며 청소년 독자들은 부모와의 갈등, 왕따, 성장의 진통 등 자기의 문제를 찾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우화(偶話)가 지닌 풍부한 상징성은 다양한 해석과 토론을 이끌어 낸다. 동화라는 부담 없는 형식과 짧은 분량 때문에 수업 과제로도 손색이 없겠다.

같은 경험을 나눈 사람끼리는 통하는 데가 있다. 같은 책을 읽은 이들끼리도 그렇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학교도서관 총괄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