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세인의 눈과 귀를 집중시킨 한 편의 기사가 있었다. 서해 고군산군도의 작은 섬 십이동파도 앞바다에서 수많은 고려청자와 함께 선박이 발견됐다는 보도였다. 국내에서는 한 해에 600여건이 넘는 크고 작은 육상발굴이 이뤄지지만, 왠지 바다에서 유물이 발굴되면 큰 뉴스가 되곤 한다. 수중발굴이 드물기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어릴 적 즐겨 읽었던 모험소설 ‘보물섬’에 대한 기억 때문일까, 아니면 뭔가 사연을 지닌 듯한 난파선에 대한 낭만적 신비감 때문일까.
▼수중문화유산 약탈에 무방비 ▼
우리가 수중유물(水中遺物)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늦봄,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 고기를 잡던 한 어부의 그물에 몇 점의 청자그릇이 건져 올려졌고, 700년 가까이 바다 밑에 머물러 있던 유물들이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던 것이다. 당시 언론에서는 긴 잠에서 깨어난 이 난파선에 ‘신안 보물선’이라는 동화 같은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 배가 엄청난 양의 유물을 토해 내서 붙여진 별명이긴 하지만, 이 이름은 썩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이 유물들이 바다를 비로소 역사의 장(場)으로 인식하게 해 준 보물과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는 옛날부터 육로 못지않게 바닷길을 통해서도 타 지역과 활발한 문화적 접촉을 이뤄 왔고 우리의 바다는 항상 동아시아 역사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 교역과 어로, 해전 등 활발한 해상에서의 활동은 바다 속에 많은 증거와 흔적을 남겨 놓기도 했다.
이처럼 바다나 강, 호수 등 물 속에 가라앉은 유적이나 유물에 접근하는 학문이 수중고고학(水中考古學)이다. 1976년부터 진행된 신안 앞바다 수중발굴조사 이후 전남 완도, 무안 도리포, 전북 군산 비안도와 십이동파도 근해 등에서 여러 차례의 수중발굴조사가 행해졌다.
신안 발굴 이후 수중유물의 발견 신고가 200건이 넘는다는 사실도 주목할 일이다. 또 몇 해 전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됐던 소위 보물선(일본, 중국, 러시아 군함) 탐사 시도에서 보듯 근현대의 역사적 증거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한반도의 바다는 유럽의 지중해 못지않은 수중 유물의 보고(寶庫)인 셈이다.
하지만 수중 문화유산은 한국은 물론 국제적으로 심각한 위험에 놓여 있다. 유물을 노리는 ‘보물 사냥꾼’들이 점차 바다로 눈을 돌리고 있고, 보상금이나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이들 수중 유물에 접근하거나 인양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수중 문화유산을 약탈과 훼손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과 움직임 또한 활발하다. 유네스코의 주도로 ‘수중 문화유산의 보호에 관한 국제협약’이 2001년 제정됐는데, 앞으로 이 협약이 수중 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적인 규범이 되기를 기대한다.
드넓고 깊은 바다는 인류의 과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지진 등의 재난으로 순식간에 수몰돼 버린 도시 유적이 있는가 하면, 사연을 안고 침몰한 무수한 난파선도 있다. 이처럼 당시의 생활 한복판에서 그대로 역사 속으로 침잠해 버린, 그래서 마치 얼어붙은 듯한 생생한 유적과 유물을 땅에서는 만나기 어렵다. 실로 바다는 살아 있는 박물관이며 우리를 과거로 데려가는 창(窓)이라 할 수 있다.
▼‘유네스코 국제협약’ 규범 삼길 ▼
훌륭한 자산을 물려받은 만큼 우리가 짊어져야 할 과제도 많다. 수중 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보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수중문화재 전문 연구기관의 확충, 수중고고학과 보존 전문가 양성, 기술 개발 등 국가적 관심과 투자가 우선돼야 한다. 그와 함께 수중 유물은 어느 한 개인이나 집단의 치부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공동유산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자리를 잡아야 한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국민과 학계 그리고 정부 당국 모두가 함께 지혜를 모으고 관심을 기울인다면, 수중 문화유산을 훌륭하게 지켜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역사의 빈 공백도 훌륭히 메울 수 있으리라 믿는다.
김용한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