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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 이슈]'싱가포르 배우기' 열풍 문제없나

입력 | 2003-11-30 17:27:00

지난 7월 뇌분리수술도중 숨진 이란의 비자니자매. 동아일보 자료사진


의료계에 때 아닌 ‘싱가포르 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다.

11월 24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아시아 의료 허브, 싱가포르’ 특강에 국내 보건 의료 전문가 200여명이 참석하는 성황을 이뤘다. 이날 발표자가 사랑이와 지혜 샴쌍둥이 분리 수술로 유명해진 싱가포르 래플즈병원의 루춘용 원장이었기 때문.

의료계가 싱가포르에 열광하는 이유는 이곳의 의료 시스템이 민간과 공공영역이 조화롭게 발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때문이다. 민간과 공공영역이 혼재돼 양쪽 모두 서로의 발목을 잡고 발전하지 못하는 국내 의료시스템의 대안으로 싱가포르를 주목하게 된 것.

서울대병원 박용현 원장도 루 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공공과 민간, 표준과 고급을 적절히 조화시킨 싱가포르가 우리 의료의 발전모델이라고 본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에 대해 의료계 일각에서는 “싱가포르 배우기는 과잉 이상기류”라며 비판을 제기해 주목된다. 비판론자들은 래플즈병원을 비롯해 우리에게 알려진 싱가포르의 의료시스템이 실제보다 과장됐다고 주장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교수는 “래플즈병원은 380여병상 규모에 세워진 지 2년밖에 안 된, 우리로 치면 중급병원에 불과하다”며 “의학기술과 관련해서도 다른 것은 몰라도 샴쌍둥이 수술 분야는 국내보다 결코 우월하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기자가 루 원장에게 확인한 결과 그동안 래플즈병원에서 이뤄진 샴쌍둥이 수술은 사랑이와 지혜 자매를 포함해 2건에 불과했다. 7월 뇌 분리 수술 도중 숨진 이란의 비자니 자매가 첫 사례였던 것. 결국 샴쌍둥이 수술이 성공한 것도 사랑이와 지혜 자매가 처음인 셈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1986년 첫 수술이 이뤄졌으나 쌍둥이 중 한명만 생존했다. 90년대 들어 한양대 소아과 정풍만 교수가 가슴이 붙은 샴쌍둥이 분리수술에 성공한 이후 지금까지 총 7건의 수술이 이뤄졌다. 96년 한양대 구리병원에서는 간이 붙은 고난도의 수술도 성공했다.

비판론자들은 또 양국의 제도적, 문화적 차이를 고려할 때 싱가포르는 결코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의료전문 최재천 변호사는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는 지리적 특수성 때문에 아시아 지역 물류와 금융의 허브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의료분야에서는 같은 화교문화권에서만 중심 역할을 할 뿐 이 시스템을 한국과 일본 등에게 적용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루 원장에 따르면 싱가포르를 찾는 외국인 환자의 70%는 인도네시아인이다. 15∼20%가 말레이시아인이며 나머지도 대부분 인도나 방글라데시 등 인접국에서 온 경우였다.

표준진료(공공) 영역 75%, 민간 영역 25% 정도인 싱가포르의 의료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도 많다. 싱가포르에서는 공공진료를 받기 위해선 통상 일주일을 기다려야 하고 암 진단을 받는 데 한 달가량 걸린다. 그러나 민간병원에서는 하루면 암 진단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제도가 민간병원 발전의 원동력이긴 하지만 동시에 부자만의 의료시스템이라는 비난도 받는다.

싱가포르와 태국 등의 의료시스템을 연구하기 위해 현지를 방문했다는 고려대 흉부외과 선경 교수도 “동남아 국가들은 우리나라와 같은 전국민 건강보험제도가 없다”며 “철저한 자본주의 논리를 따르는 싱가포르의 시스템이 우리나라에 맞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국내 샴쌍둥이 수술 현황연도분리부위수술결과병원 1986엉덩이 1명 생존 1명 사망경희대1990가슴2명 모두 생존한양대1994엉덩이2명 모두 생존한양대1995가슴1명 생존 1명 사망연세대1995가슴2명 모두 생존전남대1996가슴(간)2명 모두 생존한양대미상가슴(심장)수술 직전 모두 사망한양대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이진한기자·의사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