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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DS편견의 벽을 깨자]에이즈 가족의 눈물

입력 | 2003-11-30 18:28:00

자신과 남편, 딸이 에이즈에 걸려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김모씨. 그는 어린 딸만이라도 하루빨리 건강이 회복되기를 매일 기도한다. -박영대기자


《1일은 ‘세계 에이즈의 날’. 이날을 맞아 본보는 에이즈에 감염된 사람들이 겪는 고통과 이들에 대한 사회의 냉대를 보여주고 아울러 에이즈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한국에이즈퇴치연맹(회장 김정수)의 도움을 받아 2회에 걸쳐 기획 시리즈를 게재합니다.에이즈는 누구나 걸릴 수 있으며 병의 파괴력보다 잘못된 인식 때문에 환자가 괴로워하는 대표적인 병입니다.》

경기도에 사는 30대 주부 김모씨는 1999년 영문도 모른 채 자신과 남편, 딸 아람이(가명)가 에이즈에 걸렸다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병원에서 받았다. 그리고 5년째 에이즈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주위의 편견과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다.

“누군가 저희 가족의 가슴을 찢는 말을 해도 이제는 그들을 대신해 우리 가족이 짐을 지고 있을 뿐이라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김씨는 30일 기자와 만나 4년이 넘는 기간의 시련에 대해 담담하게 설명했다.

가족에게 드리운 짙은 먹구름은 아람이에게 먼저 찾아왔다. 아람이는 생후 8개월 때부터 각종 병치레에 시달려 치료를 받아왔다.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나 병원측에서 혹시나 하며 에이즈 검사를 한 결과 양성으로 나왔다. 곧이어 김씨 부부도 양성 판정을 받았다.

감염 경로는 정확치 않지만 비슷한 나이의 남편이 결혼 전 몇 차례 직업여성과 관계를 맺은 것 이외에는 짚이는 게 없었다. 김씨는 망연자실한 채 배를 내려다봤다. 당시 임신 6개월째였다.

다행히 김씨가 주치의의 지시에 따라 약을 복용한 덕분에 아람이의 남동생은 에이즈에 감염되지 않은 채 태어났다.

이후 김씨 가족은 주위의 냉대, 편견, 모욕에 눈물을 흘리는 삶을 살았다. 친척과 이웃은 그들이 에이즈 환자임을 알아차린 뒤 냉랭하게 변했다. 남편은 일자리를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당시 지방의 한 도시에서 살던 김씨 가족은 이곳을 떠나 전국을 전전하다 지금은 경기도의 한 연립주택에서 월 세입자로 살고 있다. 부부 모두 신용불량자가 된 지도 오래다.

김씨는 자신도 쉬 피로를 느끼는 등 몸이 좋지 않지만 아람이가 건강하게 커가는 것만을 기도하며 살고 있다.

아람이는 한때 2, 3개월마다 갑자기 고열과 폐렴 증세를 보여 응급실에 실려 갔고 2000년 말에는 죽을 고비까지 넘겼지만 서서히 면역세포 수가 많아지면서 건강을 되찾고 있다.

아람이는 올해 초부터 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이전에는 밖에서 다른 병에 감염될지 몰라 바깥 생활을 거의 하지 못했다. 친구도 없었다. 어린이날에도 사람이 많은 곳에 갈 수 없었다. 지금은 날마다 유치원에서 배운 동요를 엄마 앞에서 부르고, 신데렐라가 되고 싶다며 재롱을 부린다.

김씨는 아람이에게 예쁜 옷을 사주고 싶다. 아람이는 몇 년 동안 키가 크지 않은데다 늘 고열 때문에 옷을 벗고 살다시피 해 김씨는 세살 때 이후 딸의 옷을 산 적이 거의 없다.

아람이는 불쑥불쑥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왜 나는 이렇게 감기에 잘 걸리지?”, “왜 요즘은 아프지도 않은데 감기약을 먹어야 해?”

김씨는 그때마다 “아람이는 아이스크림과 사탕을 너무 좋아해서 감기에 잘 걸리고 지금 안 아파도 감기를 예방하려면 약을 먹어야 한다”고 둘러대곤 한다.

김씨는 교회나 성당, 절에 다니고 싶지만 아람이에게 언제 응급상황이 생길지 몰라 엄두를 못 내고 있다. 대신 하루에도 몇 번씩 두 손을 모아 기도한다.

“저희처럼 슬픈 가족이 더 없도록 해주세요. 그리고 아람이가 하루빨리 완전히 나아 건강하게 쑥쑥 자라도록 해주세요.”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