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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뷰]사랑, 첫눈 같은!…'러브 액츄얼리'

입력 | 2003-12-02 18:19:00


《‘세상 돌아가는 꼴이 우울할 땐 난 히드로 공항을 떠올린다. 세상엔 증오만 가득 찬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사랑은 어디고 있다. (…) 9·11 테러 희생자들이 죽어가는 순간에 남긴 건 사랑의 메시지였다.’ ‘러브 액츄얼리’의 첫 장면. 배우 휴 그랜트의 잔잔한 나레이션이 흘러나오면 카메라는 공항에서 반갑게 얼싸안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쳐준다. 이 영화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배경으로 사랑의 10가지 풍경을 길어 올린다. 각각의 사랑 마다 재치 있는 대사와 영상으로 빚어낸 유쾌한 영국식 유머에 녹록치 않은 감동을 깔끔하게 버무려냈다.》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노팅힐’의 시나리오를 쓴 리차드 커티스의 감독 데뷔작. 휴 그랜트, 엠마 톰슨, 리암 니슨 등 쟁쟁한 배우들도 영화를 빛내준다. 5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 가.

●사랑은 어디나 있는 것

미혼의 신임 영국 총리(휴 그랜트)는 관저에서 일하는 생기발랄한 비서 나탈리(마틴 맥커친)를 볼 때마다 자꾸 마음이 쏠린다. 서로의 처지를 생각해 자신의 사랑을 부인하던 총리는 나탈리의 마음이 담긴 성탄카드를 받고 가슴을 친다. 크리스마스이브, 주소도 모른 채 나탈리가 사는 동네로 무작정 찾아가서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고 문을 열어준 사람들은 총리를 보고 얼이 빠진다.

연인의 사랑만 가슴 찡한 것은 아니다. 아내를 잃은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새 아빠 대니얼(리암 니슨)은 자기보다 열 한 살 아들 샘이 더 걱정이다. 알고 보니, 아들의 가슴앓이는 연상의 여자친구 때문이었다. 의기투합해 사랑을 위해 도전하는 두 사람은 새삼 가족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가족보다 더 긴 시간을 보낸 친구에 대한 사랑도 있다. 한물간 록 가수 빌리(빌 나이히)와 매니저 조. 재기에 성공한 뒤 빌리는 조에게 말한다. “뚱보 추남인 자네와 세월 다 보냈어. 걸쩍지근하지만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자네야.”

●사랑 보다 더 큰 고통이 어디 있으랴

사랑은 쉬운 게 아니다. 친구의 신부에게 늘 차갑기만 한 마크. 실은, 고백조차 할 수 없는 사랑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크리스마스에 친구 집을 찾아간 마크. 현관에 나타난 친구의 아내 앞에서 그는 말 대신, 글자가 적힌 종이판을 넘기며 속마음을 드러낸다.

‘지금은 고백할래요/ 내 희망사항을…/크리스마스잖아요/ (크리스마스에 거짓말 하면 벌 받음.)/내게 당신은 완벽해요/ 가슴 아파도 당신을 사랑할거요/당신이 이렇게 (할머니가) 될 때까지….’

해마다 멋없는 선물만 주던 남편이 웬일일까. 주부 캐런(엠마 톰슨)은 우연히 남편의 호주머니에 하트 목걸이를 발견한다. 그러나 남편의 성탄선물을 열어본 아내는 충격을 받는다. 목걸이의 주인은 아내가 아니었다.

시련이 있다고 사랑이 끝나진 않는다. 여자친구와 동생의 불륜을 알고 상심한 작가 제이미(콜린 퍼스). 도망치듯 프랑스에 건너온 그는 집안일을 도와주는 포르투갈 여인 오렐리아를 만난다. 둘은 전혀 말이 한 통한다. 그래도 사랑은 다 통한다.

●필요한 것은 오직 사랑뿐

크리스마스 시즌. 때로 마음 훈훈하고, 때로 가슴 저미게 하는 여러 갈래의 사랑이야기는 결국 한 곳으로 모인다. 이 영화의 모든 사랑은 우리에게 말한다. ‘누구에게나 특별한 사람, 특별한 사랑이 있다. 그러니 우린 혼자가 아니다’라고.

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