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너 마리아 릴케. 그는 20세기 세계문학의 커다란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의 시와 산문은 메타포가 흘러드는 저수지와도 같다. 서구의 현대문학은 ‘말테의 수기(手記)’와 ‘두이노의 비가(悲歌)’의 모서리에 부딪치며 세차게 소용돌이친다.
‘언어의 물질성을 가장 가까이서 살려낼 줄 알았던 릴케는 역설적으로 가장 눈부신 초월성을 획득했다.’ 그것은 존재의 가장 안쪽(物)에서 바깥쪽(神)의 통로를 열어젖히는 것이었다.
릴케의 문학은 하나의 비탈을 이루고 있다.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그의 시맥(詩脈)은 청년기의 저지대에서 시작해 곱이곱이 넘어야 할 봉우리를 남기면서 마침내 독자들을 산 정상의 암벽지대에 홀로 떨어뜨려 놓고 만다.
이 지극히 알프스적인 릴케의 작품세계를 독일의 평준(平峻)한 산문가 헤르만 헤세는 부러워 어쩔 줄을 몰랐다.
청년 릴케가 14살 연상의 루 살로메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1900년 그녀와 두 차례 러시아 여행을 같이하면서 릴케는 불우한 어린시절의 그늘을 떨쳐버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심미적인 평형 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 이전까지 그의 넘쳐나는 재능은 “단지 공회전을 거듭하고 있다”는 혹평을 들어야 했다.
릴케의 영원한 연인 살로메. 생애 처음 격렬한 사랑을 고백했던 니체에게 그녀는 ‘팜 파탈(Femme Fatale·치명적인 여인)’이었으나 릴케에게는 진정한 뮤즈였다. 그녀는 그에게 자신의 영혼조차도 기꺼이 바치고자 했다.
릴케는 이렇게 토로했다. “애초에 그렇게 가망 없는 존재였음에도 그녀에 이끌려 (나는) 구원에서 구원으로 나아갔다….”
‘죽음이란 우리에게 등을 돌린 빛이 거주하는 또 다른 생(生)의 공간’이라고 말한 릴케. 그는 1926년 어느 가을날 여자 친구를 위해 장미를 꺾다 가시에 찔려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릴케는 자신의 묘비를 직접 썼다. ‘장미, 오 순수한 모순이여/ 수많은 눈꺼풀 아래 누구의 것도 아닌/ 잠이고 싶은.’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