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목포시에는 1897년 개항 이후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해 도심 곳곳에 민족 수탈사를 엿볼 수 있는 근대 건축물들이 많다.
하지만 자치단체의 관리 소홀 등으로 역사적 보존가치가 높은 건축물이 훼손되거나 철거되는 등 하나 둘씩 자취를 감추고 있다.
목포문화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역사의 산 교육장들이 사라지는데 대해 시가 수수방관하고 있다며 일제 강점기 때 지어진 건축물에 대한 실태조사와 보존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불타고 허물어지고’=1935년 지어진 옛 죽동교회가 9월29일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소실됐다. 항일 민족운동의 산실이기도 한 이 건물은 목포지역의 대표적인 근대 석조 건축물이다.
목포시는 소방도로를 만들려고 교회건물을 사들여 철거하려다 보존을 촉구하는 시민단체와 마찰을 빚었다. 목포문화연대측은 불에 탄 교회건물도 나름대로 역사적 가치가 있다며 그대로 보전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시는 문화재 전문위원들의 의견을 들어 철거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1920년대 초반에 지어진 목포 정명여고 유애나관도 사라졌다. 전남 최초의 기독교 학교이자 여성교육기관인 정명여고 외국 선교사 출신 교장의 이름을 딴 이 건물은 2층 벽돌조의 서양식 건축물이다. 학교 측이 다목적체육관을 지으면서 9월 이 건물을 허물었다.
▽예산 때문에 매입 못해=1930년대 초 목포에 지어진 최초의 일본식 절인 동본원사(東本願寺) 목포별원은 당초 목포시가 사들이려고 했으나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무산됐다.
식민지 수탈을 상징하는 동양척식회사 관사 건물은 최근 한 교회가 주차장을 넓히기 위해 사들여 사라질 위기를 맞고 있다.
1919년 지어진 이 관사는 당시 일본인의 부와 권위를 상징하는 돋보이는 주택이어서 보존가치가 높지만 부지가 3000평이나 돼 목포시는 사들일 엄두도 못내고 있다.
목포 문화연대 관계자는 “3년 전 조례로 제정된 문화유산보호위원회를 한번도 개최되지 않는 등 목포시의 보존대책이 소홀하다”면서 “남아있는 10여개 건물을 시가 매입해 보존 및 활용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표류하는 역사문화의 길=목포시는 2012년까지 유달, 만호, 무안동 일대에 산재한 근대 건축물을 정비 복원해 관광자원화할 계획으로 지난해부터 338억원을 투입해 역사문화의 길을 조성하기로 했다.
그러나 시는 14억원을 들여 옛 동양척식회사와 이난영 생가터 복원사업만을 끝냈을 뿐이다. 시는 올해 문화관광부에 국비 29억원을 요청했으나 문광부가 난색을 표하고 있으며 내년에 지원을 요청한 국비 5억원도 반영 여부가 불투명해 사업 추진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목포시 관계자는 “일부 건축물은 사유재산이어서 매입이 쉽지 않은데다 예산도 전액 시비로 충당해야 돼 난항을 겪고 있다”며 “일부 건축물을 보존하기 위해 내년에 시민단체와 함께 1945년 이전 건물에 대해 실태조사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목포=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