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렘브란트 광장. 네덜란드가 낳은 17세기 위대한 화가의 이름을 딴 광장답게 주말마다 상설 미술 시장이 열려 전 세계 관람객들을 맞고 있었다.
비록 정식 화랑이나 미술관이라는 공간에 진입하지 못한 언더그라운드 화가들이 펼치는 무대였지만, 인물, 풍경, 정물 등부터 현대 회화까지 장르도 다양했으며, 미적인 수준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었다. 가격도 30만원에서부터 200만원 안팎이어서 현지 주민은 물론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한 나라의 문화 경쟁력의 잣대는 그 문화를 사고파는 시장에서 결정된다. 미술품도 예외가 아니다. 꽁꽁 얼어붙은 국내 미술 시장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많지만, 이는 지금까지 미술의 대중화보다는 '소수의 컬렉터' 위주로 작품을 판매해 온 미술계의 안이한 대응이 자초한 결과라는 자성의 목소리도 들린다.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린 네덜란드 회화전에 20여만명의 관람객이 몰려 성황을 이룬 것을 보더라도 예전과 달라진 미술 애호가들의 폭과 깊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과 맞물려 제대로 된 그림 한 점을 소장하고 싶다는 수요도 늘고 있다. 이들을 끌어들일만한 미술시장은 없을까.
마침, 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이 상설 미술시장을 개설한데 이어 한국 중견 작가들의 품격 있는 작품을 선보이는 제1회 서울 아트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서울옥션의 아트 컨설턴트 장경화씨는 "그림을 무조건 어렵다고 생각하기보다, 직접 미술시장을 돌아보면서 안목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며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작품을 구입해 적절한 공간에 걸어 놓으면 집안의 품격을 한층 높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제1회 서울 아트페스티벌=미술기획사 아트컴퍼니가 11일까지 서울 평창동 서울옥션아트페어에서 개최하는 행사. 1000만원이 넘는 작품도 있지만, 주로 20만~30만원대부터 200만~300만원대 작품들이 대종을 이루고 있다. 이 행사를 주최한 유석우 대표는 "요즘 미술은 너무 어렵다는 지적이 많은데, 무겁지 않으면서도 은근하고 아름답지만 가볍지 않은 작품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며 "회화 입체 조각 도예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25명 작가들이 작품을 선보였다"고 말했다. 참여작가는 지석철, 장혜용, 정현숙, 김선두, 김만근, 김재학, 도흥록, 박훈성, 이목을, 한젬마, 권두현, 정재호씨 등.
유 대표는 "현재 미술시장은 이른바 '이발소 그림'과 소수의 컬렉터들이 선호하는 그림으로 양분된 실정"며 "품격과 아름다움을 갖추면서도 재미있고 가격 만족도가 높은 국내 작가들의 작품이 많은데 이 같은 구슬을 꿸 수 있는 시장이 더욱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02-391-1541
▽예술의 전당 미술시장=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은 9월부터 한 달에 10일간씩 미술시장을 열고 있다. 그동안 한국 현대 미술제(9월19일~10월5일), 서울 판화미술제(10월11일~19일), 화랑미술제(11월7~12일) 등이 열렸다. 올해 행사는 모두 끝났고 내년 1월부터 미술 시장을 다시 열 계획이다.
김순규 이사장은 "고급 예술의 대중화라는 예술의 전당 운영 목표에 걸맞게 한국 현대 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10만원대부터 시작해 200만원 안팎으로 살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가람 미술관은 단지 '시장'이라는 공간을 제공하고 행사 진행은 독립적인 행사주최자들이 돌아가며 운영해 미술의 대중화라는 공공적 성격을 부각시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곳에서 한국 현대 미술제를 주관한 박영덕 화랑의 박영덕 사장은 "경기 불황으로 매출은 기대보다 15% 정도 못 미쳤지만 작품이 좋다는 평가를 받은 젊은 작가들의 100만원~200만원대 작품을 사가는 관람객이 많이 늘었고, 관람료(성인 6000원)를 내고 들어 온 유료관객 수도 6000여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02-580-1517
디지털뉴스팀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