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당신들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미국 육군 중앙신원확인소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문구다. 미국은 1976년 세계 각국의 전쟁터에서 실종된 미군 포로와 전사자 유해를 찾기 위한 연구소를 설립했다. 그리고 지구촌 끝까지 찾아가서 그들의 전쟁영웅을 모셔오고 있다. 북한에도 수백만달러의 발굴 비용을 지급하면서 27차례에 걸쳐 미군 유해 공동발굴작업을 벌인 바 있다.
베트남전쟁 때는 월맹포로수용소에 억류돼 있는 미군 포로들을 구출하기 위해 공군 구조대를 침투시켰고, 코소보전쟁에서도 격추된 F-16 조종사를 구하기 위해 대대적인 구출작전을 벌였다. “당신들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라는 맹세를 행동으로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북한을 탈출한 국군 포로 전용일 일병이 주중 한국영사관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그때 영사관측의 대답은 “우리는 당신을 알지 못한다”였다. 전 일병에게 “조국은 당신을 잊은 지 이미 오래다”라고 들렸을 것이 분명하다.
스무 살의 꽃다운 나이에 국가의 부름을 받아 전장으로 달려갔던 전 일병. 이제 72세의 노병이 돼 천신만고 끝에 찾아간 조국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을 때 그 분노와 절망이 어떠했을까.
6·25전쟁으로 인한 국군 포로는 4만2000여명. 그 중 500여명이 아직 북쪽에 생존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을 송환하려는 정부의 의지는 미약하기 짝이 없다. 의지마저도 상실했는지 모른다.
전쟁 포로나 전사자 유해를 모셔 와야 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이자 책임이다. “국가가 언젠가는 나를 구하러 온다”는 것을 확신할 때 어떤 병사가 포로 되는 것을 두려워하겠는가? 그런 확신이 없을 때 포로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병사가 어디 있겠는가?
전쟁이 끝나면 전사자는 호국의 일등공신으로 추앙받고, 살아남은 자는 전쟁영웅으로 예우받아야 마땅하다. 그래야만 국가 존망의 백년대계를 보장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국군 포로는 국민의 뇌리에서 잊혀진 지 오래고, 살아남은 참전 노병들은 월 5만원의 수당을 받으며 서운한 마음을 달래고 있다. 군 복무 중인 젊은이들은 비좁은 내무반에서 칼잠을 자야 하고, 젊음을 군에 바친 제대군인들은 제2의 취업전선을 헤매야 한다. 이러고도 국방을 신성한 국민의 의무라고 할 것인가. 현실이 이러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군대에 가지 않으려는 풍조가 만연하는 것 아닌가.
영국의 대표적 명문 고등학교인 이튼과 헤로 출신 중 1, 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수는 양교가 10년간 배출한 졸업생 수와 비슷하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6·25 때 지도층 인사들의 아들이 전사 또는 부상당했다는 기록을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나라 고관대작들 아들 중에 국군 포로가 없기 때문에 포로 송환에 소극적이라는 비판도 생겨나는 것이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정부는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전 일병을 데려와야 한다. “우리는 당신들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란 약속을 북한에 생존해 있는 국군 포로들과 지금도 국토방위에 여념이 없는 70만 국군 장병에게 확실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이상훈 대한민국제향군인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