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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오명철/박찬욱과 봉준호

입력 | 2003-12-04 18:19:00


최근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올드보이’를 만든 박찬욱 감독(40)과 올해 한국 영화계 최대 흥행작인 ‘살인의 추억’을 연출한 봉준호 감독(34)이 모두 민주노동당 당원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다. 민노당은 두 감독이 새로운 기법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흥행대박을 터뜨린 것처럼 내년 총선에서 자신들이 돌풍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오아시스’와 ‘바람난 가족’에서의 호연으로 연기파 배우로서 입지를 구축한 문소리씨도 민노당원이다. 미남배우 리처드 기어로 인해 티베트 불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듯 민노당의 이미지가 조금은 달라 보인다.

▷할리우드는 전통적으로 민주당의 텃밭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마녀사냥 식으로 좌파 성향의 할리우드 인사들을 대거 축출한 매카시즘에 대한 반감에다 1960년대 만들어진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이지 라이더’ 같은 영화들이 반전 반체제 무드를 고조시켰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폭력 섹스 등에 비교적 너그러운 입장을 취하고 있는 반면 공화당은 마약 섹스 동성애를 혐오하고 있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할리우드는 변호사업계 노동조합과 함께 민주당의 3대 돈줄로 최근 12년간 할리우드 정치헌금의 64%가 민주당, 35%가 공화당으로 갔다는 통계도 있다.

▷로버트 레드퍼드, 로버트 드니로, 톰 행크스, 니컬러스 케이지, 숀 펜, 제인 폰다, 수전 서랜던, 샤론 스톤 등 유명 배우들이 친(親)민주당이다. 공화당을 지지하는 인사는 최근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된 ‘터미네이터’의 아널드 슈워제네거와 ‘다이 하드’의 주인공 브루스 윌리스 정도. 호모 혐오론자에다 애국심을 고취하는 영화에 많이 출연한 멜 깁슨은 좌파 성향의 할리우드 인사들이 가장 싫어하는 배우다. 매카시즘의 와중에서 공산당원으로 활동했던 동료들을 고발했던 엘리아 카잔은 ‘에덴의 동쪽’ ‘워터 프론트’ ‘초원의 빛’을 만든 명감독 이었음에도 불구, 후반생을 줄곧 좌절과 고독 속에서 지내야 했다.

▷정치권이 문화 예술계 인사와 스포츠 영웅들에게 끊임없이 관심과 애정을 쏟는 것은 스타들의 높은 인지도와 대중 동원력 때문이다. 각종 정치 집회나 연설회에 그들이 참석해 분위기를 띄울 경우 그 파괴력은 엄청나다. 일부 스타들은 자신이 직접 정치주역이 되기 위해 정치판에 뛰어들지만 ‘들러리’ 노릇이나 하다가 씁쓸하게 ‘놀던 물’로 돌아오곤 한다. 그런 점에서 두 촉망받는 감독이 “영화와 정치적 지향은 별개이며, 변함없이 감독의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다짐하는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