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 5명으로 구성된 구슬공예업체 ‘10 TO 5’의 공방에서 구슬을 이용해 각종 장신구를 만들고 있는 구성원들. 구슬 하나에 희망 하나를 꿰며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꾼다. -권주훈기자
“‘십 투 오(10 TO 5)’ 맞죠?” “아니에요. ‘텐 투 파이브’예요.”
조영희씨(35·여)가 환하게 웃으며 반겼다. 조씨는 구슬공예 업체 ‘10 TO 5’의 대표.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성산시영아파트 열린복지관 3층, 구슬을 재료로 각종 여성 장신구를 만드는 이곳에선 모두 5명의 여성이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름도 ‘10 TO 5’다. 5명이 10개의 손으로 희망을 꿰자는 뜻으로 조씨가 지었다. 업체 이름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5명의 여성에겐 모두 한 명씩 부양가족이 있다. 10명은 20평 남짓한 시영아파트에서 함께 생활한다. 이들은 한 미혼모시설에서 처음 만났다. 3명은 미혼모로, 2명은 이혼 후 뱃속의 아이를 낳기 위해 미혼모시설을 찾은 것이다.》
“정말 막막했어요. 비빌 언덕이 없더군요.”
조씨는 지난해 초 이혼했다. 결혼 후 곧바로 미국에 갔던 조씨는 4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뱃속에는 4개월 된 아이가 있었다.
위자료는 한 푼도 받지 못했고 부모는 사업이 부도가 나 생활이 어려웠다. 마땅히 기댈 만한 친인척도 친구도 없었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조씨는 곧바로 미술학원에 취업했다. 월급은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월세를 내고 살림을 장만하고 출산용품을 준비하느라 돈을 모을 여력이 없었다. 출산일이 다가오자 미혼모시설에 들어가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출산 후 보름 만에 핏덩이를 놓아두고 일자리를 찾아 나서는데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다행히 한 미술학원에 취업이 확정됐지만 이혼한 사실을 밝히자 ‘없던 일’이 돼버렸다.
아이를 낳고 석 달 정도 된 지난해 11월 미혼모시설에서 구슬공예 자활공동체 참여를 부탁했다. 조씨에겐 일자리가 시급했고 구슬공예팀에선 디자이너가 필요했던 것.
조씨가 합류한 뒤 구슬공예팀의 작품은 여러 곳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고 올해 6월 ‘10 TO 5’란 이름으로 정식 창업을 했다.
별도의 판매점이 없는 ‘10 TO 5’는 지금까지 대학 주변이나 벼룩시장에서 물건을 판매했다. 판매수익금은 재료비를 빼고 모두가 똑같이 나눠 갖는다. 현재 1인당 매달 70만∼90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함께 일하는 막내(23세의 미혼모)도 아이와 함께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데 가장 언니가 돼서 주저앉을 수 있나요?”
일이 많을 때는 오전 1, 2시까지 작품을 만드는 조씨는 낮엔 주문을 받기 위해 샘플을 들고 액세서리 전문점을 직접 찾아다닌다.
조씨에겐 최근 또 하나의 일거리가 생겼다. 사회연대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4000만원으로 판매점포를 임대하기 위해 부동산 중개업소를 찾아다니고 있다.
조만간 문을 열 ‘10 TO 5’ 1호점은 이들에게 시작에 불과하다.
광주 북구 우산동 말바우시장에는 ‘억척 아줌마’가 있다.
2년째 이곳에서 두부를 만들어 팔고 있는 오효남씨(54)가 바로 그 사람이다. 오씨는 29세에 이혼한 뒤 홀로 아들을 키우며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공장 근로자, 영아원 보모, 간호조무사, 미용사…. 아마 나만큼 많은 직업을 경험한 사람도 드물 겁니다.”
지금까지 20여가지 직업을 전전했다는 오씨는 10여년 전 미용실을 차리려다 사기를 당해 600만원을 날렸다. 지인에게 사업자금으로 빌려준 4000만원은 지인이 숨져 돌려받지 못했다.
아들은 신용카드 빚을 내 학교 선배에게 700만원을 빌려줬다가 선배가 돈을 갚지 않아 신용불량자가 됐다. 아들 빚을 갚아주려던 오씨 역시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오씨는 공공근로라도 하며 생계를 꾸려갈 생각이었지만 공공근로 도중 다리를 다쳤다. 고혈압에 퇴행성관절염까지 겹쳐 지금도 양 다리에 붕대를 감고 다녀야 한다.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심정이었어요.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이 일을 시작했지요.”
2001년 여름 자활후견기관의 도움을 받아 ‘두부마을’이란 두부공장을 차렸다.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밤새 두부를 만들고 낮엔 이를 팔기 위해 말바우시장을 누볐다.
“한 모에 500원! 방부제를 넣지 않아 아주 담백합니다. 맛보고 사세요.”
단골식당이 한두 곳 생기더니 금세 소문이 퍼졌다. 지난달 매출액은 800만원. 이달에는 1000만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사회연대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4200만원으로 새 두부가공기계를 들여놓았다는 오씨는 “두부 모양이 훨씬 예뻐졌다”며 “이제 내가 더 힘든 사람을 도울 차례”라고 말했다.
“방송에서 어려운 사람 돕자고 자동응답시스템(ARS) 번호를 알려주면 두세 통씩 걸어요. 가진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가난이 뭔지 누구보다 뼈저리게 아니까요.”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은 이들은 하루하루 자신의 꿈과 이웃에 대한 감사를 저축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재명기자 egija@donga.com
▼사회연대은행은 어떤곳 ▼
김성수 이사장
“은행 맞아요?”
2월 출범한 사회연대은행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부자에게 대출하는 곳이 은행이라면 이곳은 은행이 아니다. 은행이 담보를 요구하는 곳이라면 이곳은 확실히 은행이 아니다.
사회연대은행 김성수(金成洙) 이사장은 출범식 인사말을 통해 “사회연대은행은 돈이 아니라 연대(連帶)를 저축하고 공동체의 결속과 믿음을 빌려주는 곳”이라고 말했다.
연대은행은 자활의지와 능력이 있는 저소득층에 돈을 꿔주는 비영리 자활지원기관이다.
삼성그룹이 사회복지공동기금을 통해 출연한 10억원을 종자돈으로 지금까지 11개 자활공동체 46명에게 모두 2억7000만원을 대출했다.
대출을 받기 위해 담보나 보증은 필요 없다. 다만 창업에 참여한 사람들이 서로 연대보증을 서는 형태로 돈이 지원된다. 신용불량자도 창업공동체에 참여하면 얼마든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개인 창업자도 대출을 받을 수 있으나 연대은행은 가능한 한 공동체 창업에 많은 자금을 지원할 계획이다.
최대 대출액은 1인당 1000만원이며 연리 4%에 6개월 거치 3년 상환으로 대출조건도 매우 좋다.
물론 누구나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0억원을 출연한 삼성그룹이 이 돈을 여성가장에게 지원되길 희망해 현재는 창업 공동체 참여자의 70% 이상이 여성가장이다. 출연금이 늘어나면 다른 창업자에게도 확대할 계획이다.
사업경험이 있거나 기술력이 있으면 대출받기가 더욱 쉽다.
그러나 사업능력이 없다 해도 노동능력과 자활의지가 있다면 얼마든지 자기 사업을 할 수 있다. 연대은행은 돈을 빌려주는 데 그치지 않고 제조와 판매, 유통, 상품디자인, 마케팅, 홍보 등 경영전반에 대해 조언해 줄 수 있는 전문가를 각 사업장과 연결시켜 주기 때문이다.
연대은행은 5년 안에 200억원을 모금해 여신과 수신이 모두 가능한 정식 금융기관으로 등록할 예정이다.
연대은행의 최종 목표는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처럼 성장하는 것. 1976년 방글라데시 치타공대 경제학과 무하마드 유누스 교수가 빈민구제를 위해 설립한 이 은행은 현재 전국 1176개 지점을 통해 240만명에게 1600억다카(약 2조8500억원, 누계 기준)를 신용만으로 대출해주고 있다.
이 은행의 대출금 상환율은 98%에 달한다. 돈을 갚지 않는다고 법적 책임을 묻지 않지만 한 지점 안에서 한 사람이라도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면 다른 대출자가 대출한도 등에서 불이익을 받기 때문이다.
나라님도 구제하기 힘들다는 가난을 서로가 서로의 신용을 담보해주는 연대의식으로 극복하겠다고 선언한 사회연대은행이 앞으로 어떤 성과를 거둘지 주목된다.
문의 사회연대은행 http://www.bss.or.kr, 02-2274-9637. 계좌번호 조흥은행 323-01-223494, 예금주 (사)함께 만드는 세상.
이재명기자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