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사진에 새로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디지털 카메라(디카)가 발전하면서 사진을 촬영하고 이용하는 빈도가 부쩍 높아졌다. 예전엔 보기 힘들던 젊은 학생들의 고궁촬영 모습도 디카의 보급에 비례해 증가했다. 컴퓨터로 이미지를 주고받는 그들 사이에서 사진은 언어를 대체하는 지경까지 온 듯하다. 170여년 전 사진이 탄생하면서 폭발적 인기를 누렸던 것처럼 지금 사진이 새롭게 호응을 얻고 있다.
▼사진과는 느낌 다른 ‘디지털 사진’▼
돌이켜보면 1960년대까지 사진은 우리 삶에 매우 깊게 파고들었다. 신문 잡지를 중심으로 수많은 사진이 생산되고 소비됐다. 그러나 텔레비전 영화 등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사진의 사용이 상당히 위축됐다. 많은 잡지매체들이 도산하면서 사진은 말초적 자극을 노리거나 물건을 사고파는 것이 주관심사인 잡지를 중심으로 소비돼 온 것이 그간의 현실이다. 하지만 ‘디지털-사진’이라는 새로운 매체가 태어나면서 다시금 사진이 각광 받게 됐다.
어원으로 살펴보면 사진은 빛(photo)으로 그리는 그림(graphy)이다. 그리고 그림은 ‘그리움’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러니까 사진은 인간이 갖는 직간접적 그리움을 밖으로 표현하는 수단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요즘 우리 사회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사진의 사용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이해된다. 누구나 사진을 통해 ‘모습’을 주고받고 그 ‘모습’이 그 사람(혹은 사물)에 대한 중요한 판단 근거가 돼가고 있으며 이를 상업적으로 증폭시키려는 힘이 여기에 덧대어져 디카와 폰카가 필수품처럼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도구들은 다시 우리가 가진 시각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예술의 측면에서는 소위 포스트모더니즘 시기를 거치며 사진이 예술작업에서도 중요한 매체로 떠올랐다. 미국 중심의 얘기이긴 하지만 사진이 사진에 찍힌 그림 값보다 비싸게 매겨지기도 한다는 사실이 요즘 사진의 위상을 잘 말해 준다.
하지만 사진을 이처럼 손쉽게, 그리고 많이 사용하게 되면서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지금 디지털로 만들어 내는 이미지가 과연 무엇이냐는 것이다. 아직은 별 생각 없이 대다수 사람들이 이를 사진이라고 부른다. ‘디지털사진’이라고. 하지만 사진이 포토그래피라고 명명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사진의 아이덴티티는 ‘필름’과 ‘현상에 관계된 화학물’들과 ‘카메라옵스큐라(cameraobscura·암실)’의 삼각꼭지점에서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 이미지는 제작방식이 이와 사뭇 다르다. 종래에는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 사진을 찍으면 그것으로 찍혀진 대상과의 관계가 끝나는 것으로 인식했다면 지금 디지털 이미지는 셔터를 누르고 난 다음 비로소 그 대상에 의식을 개입시킨다. 그러니까 찍힌 이미지를 가공해 자신이 바라는 어떤 목적을 완성하게 된다. 사진 안에 보이는 것 이상의 배후함의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사진 속의 대상을 대하는 태도가 디지털 작업에서는 당연히 가볍게 되게 마련이다. 이미지의 생산과 가공을 쉽게 생각하게 되면서 오히려 그 이미지의 배후함의에 쉽게 빠져들게 된다. 특히 삶의 경험이 적은 젊은 학생들일수록 그런 경향이 많다. 이미지를 쉽게 생산하는 동시에 그렇게 생산된 이미지에 쉽게 중독도 되는 것이다. 지금 많은 젊은이들이 이렇게 만들어진 상업적 이미지에 휘둘리고 있는 것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디카세대 이미지 중독 경계해야 ▼
그래서 이 디지털로 생산한 이미지를 ‘디지그래피(Digigraphy)’라 부르자고 제안하고 싶다. 디지털로 만들어진 그림이기에 그러하기도 하고, 이렇게 부름으로써 기존의 사진이 가진 의미도 지키고, 새로운 방식이 가진 이 같은 특성을 사람들에게 각성시킬 수 있기에 제안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행을 가기 위해 자동차를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가 있기에 여행을 떠나곤 한다. 도구와 의식의 도치현상이다. 이미지의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엄청난 도치현상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주하 사진가·백제예술대학 사진영상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