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지식권력이 움직인다'는 한국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적극 기여하기 위해 전문지식을 활용하며 집단화, 조직화하고 있는 지식인들의 움직임에 주목해 이들의 활동내용과 이념적 성향을 분석해왔다. 지식인들은 냉전체제가 무너진 1980년대 말부터 사회변혁운동에서 시민운동 쪽으로 방향을 틀어 폭넓은 분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지식권력을 형성해 왔다. 기획을 마무리하며 좌담을 마련, 지식권력의 의미와 과제 및 전망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권한대행, 원용진 문화연대 정책위원장, 김호기 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이 참석했다.
▽김호기 상임집행위원=현 시점에서 왜 지식권력이 문제가 되는지에 대해 먼저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사회가 전문화 세분화하면서 전문가들의 도움이 더욱 필요해지고 있다는 점, 지식정보사회가 도래하면서 지식 자체가 중요한 자산으로 여겨진다는 점, 그리고 이로 인해 정치권력에 영향을 미치는 담론 영역에서 지식권력의 역할이 중요해진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겁니다.
▽원용진 정책위원장=지식권력의 작동방식이 변하고 있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전에는 지식인들이 개인적으로 정권에 참여했던 데 비해 이제는 지식인들 스스로 다양한 방식으로 조직화하면서 분화되고 있습니다. 다만 이 기획의 첫 회에 제시된 '지식권력 분포도'에서도 드러났듯이 보수우파 진영에는 지식권력 집단이 별로 없어요. 그 동안 개인화된 방식으로 '암약'해 온 보수우파의 지식인들이 아직 조직화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보수우파의 조직이 제대로 갖춰져야 상대적으로 진보 좌파적 성향의 조직도 건실해질 수 있습니다.
▽김정호 원장 대행='보수'라는 개념이 갖는 부정적 인상 때문에 보수를 자처하기가 어렵다는 현실도 고려해야 합니다.
▽원용진=현재 한국사회의 지식권력은 1980년대 또는 그 이전의 참여 방식과는 다르다는 점도 주목해야겠죠. 이전에는 정치권력이 지식인들을 도구로 활용하는 면이 강했던 데 비해, 이제 지식권력은 자신들의 입장에 따라 정부를 활용해 자신들의 이상을 실현하려 합니다.
참석자들은 각 '지식권력'들이 한국사회에 대해 내놓고 있는 서로 다른 진단과 정책대안 들 사이에서 공통점을 수렴해 한국사회 발전을 위한 대안을 찾으려 했다.
▽김호기=한국사회는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장에서의 경쟁을 중심으로 재편돼 왔는데 지난 10년 동안 성장은 없이 분배구조는 양극화돼 왔습니다. 성장을 늘리고 분배구조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국가주도형 발전모델이나 시장주도형 발전모델보다는 국가와 시장, 시민사회 세 주체가 힘의 균형을 이루도록 할 필요가 있어요. 이를 위해서는 아직도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시민사회의 힘을 키워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용진=지식권력들이 다양한 대안들을 내놓고 있지만 공통점을 찾아보면 먼저 '공공성의 구축'을 가장 큰 화두로 삼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어요. 그런데 공공성의 구축과 시장의 구축은 상당히 맞부딪히는 점이 많아 다들 고민이지요.
▽김정호='시장'에 대해 오해가 있는 듯합니다. 예컨대 교육의 경우 학부모와 학생들이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자는 것을 시장 중심주의라고 비난하는데 여기서 핵심은 '시장'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자'는 겁니다. 학부모와 학생이 가고 싶은 학교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자는 것이지요. 공공성을 중시한다는 입장은 제3자가 "당신들은 이런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인데 이는 사실상 '강요'입니다.
▽김호기=하지만 사회적 불평등 해소나 사회적 약자 보호 등의 문제에서는 어느 정도 공적 규제가 필요합니다. 시장이 그런 문제점을 낳는다면 그에 대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거죠. 1990년대까지는 한국사회에서 정치나 사회에 비해 시장의 역할이 부족했지만 현재는 시장의 힘이 너무 과도해졌습니다. 그런 점에서 '안민정책포럼'이 내세우는 '공동체 자유주의'에 공감이 갑니다.
▽원용진=시장이란 언제나 실패를 전제로 합니다. 결국 실패자와 성공자가 병존한다는 것인데 실패자를 보완해 줄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것이 곧 '공공성의 구축'인데 '공공성의 영역을 만들어가는 것은 낭비'라는 사고가 팽배해 있습니다.
▽김정호=자유주의나 개인주의에서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갖고 있고 이런 측은지심을 국가가 맡아서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모든 관계에서 강자와 약자가 존재하는데 매 관계마다 국가가 개입해서는 부작용이 너무 큽니다. 그런 거래관계는 그대로 놔두고, 나중에 소득 등을 기준으로 예컨대 '최하 10%를 도와주도록 한다'는 식으로 제도화하자는 거죠.
한국사회의 지식인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데는 참석자들 모두가 동의했다. 그러나 입장이 다른 지식권력 사이에 건강한 긴장과 협력이 더욱더 필요하다는 과제도 제시됐다.
▽원용진=보수주의 또는 자유주의적 입장의 지식인들이 조직화해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과 한 테이블에 앉아 토론해야 합니다. 다양한 지식권력의 입장을 이끌어내 사회적 의제로 만드는 것은 언론의 중요한 역할이기도 하죠. 또 지식권력 자체를 부정적으로가 아니라 이번 기획처럼 긍정적, 생산적으로 인정하며 더 적극적으로 폭넓게 네트워크화해야 해요. 시민사회에서 활동하는 지식권력도 시민연대와 민중연대로 갈라져 있는데 이들도 예전에 비해 서로 통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김정호=시민단체들이 많아지면서 토론문화가 활성화됐습니다. 지식권력과 같은 싱크탱크의 역할은 정책개발보다는 논리의 개발입니다. 논리를 제공함으로써 '싸움'이 '토론'으로 발전하도록 하는 것이지요. 보수-자유주의 진영의 문제는 열정은 없이 머리로만 현실에 개입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여론과 부딪히는 일을 잘 하려하지 않고 토론회에도 공짜로는 나가려 하지 않습니다. (웃음) 이 점은 진보진영을 본받아 스스로 극복해야 할 문제입니다.
▽김호기=지식권력의 과잉이냐 과소냐 하는 논란에서도 벗어나야 합니다. 특히 사회과학의 경우 연구 대상이 사회이기 때문에 사회적 발언을 하고 대안을 내놓을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서도 지식권력은 진리 또는 학문의 생산자라는 점에서 한편으로 정치권력, 경제권력, 사회문화권력 등 타 권력으로부터 자율성과 독자성을 가져야 해요. 결국 모든 지식권력이 함께 21세기 한국 사회에 필요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드는 것이 궁극적 과제입니다.
정리=김형찬기자 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