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경제에는 수수께끼가 하나 있다.
‘왜 투자가 안 되는 것일까’다. 경기가 펴지려면 소비, 수출, 투자 3가지가 활발해야 한다. 수출은 잘 된다. 수출은 가동률 상승→고용 증가→소득 증가→소비 활성화로 이어져야 한다. 수출은 또 투자 증가로 연결된다. 그러나 이런 연결고리가 끊어졌다.
소비가 뜨지 않는 것은 알다시피 가계신용이 망가져서 그렇다. 돈이 생기면 빚 갚기 바쁘다. 소비가 견인하는 경기회복은 당분간 기대하기 힘들다.
투자는 왜 안 될까.
돈이 없나? 천만에, 개인이고 기업이고 돈은 쌓아두고 있다. 부동(浮動) 자금만 400조원이 넘는다 한다. 한국사회의 멱살을 잡던 부동산투기도 과잉유동성 때문이다. 그러면 ‘투자의 비용’이라는 금리가 높은가? 초(超)저금리 상태다.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이 없는가? 한국만큼 기업가 정신이 충만한 곳도 드물다. 기업가 정신이란 ‘기대수익이 있으면 위험을 무릅쓴다’는 뜻. 기업가 정신이 없는 곳에선 부동산투기도 안 일어난다.
“투자가 안 되는 진짜 이유는 돈 벌 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그룹 재무임원들과 만나 얘기해 봐도 ‘돈 될 사업이 없다’는 얘기뿐이다. 투자는 심리가 아니라 계산이다.”(A그룹 재무담당 김모 상무)
이 얘기가 진짜다. 기업은 돈 버는 집단이다. 안정적으로 수익만 낼 수 있다면 누가 뭐래도 투자한다. 대통령이 밉고 정치불안이 심해 투자 안 하는 일은 실제로는 없다. 생각해보라. 군사정권이 호령하고 위정자가 뇌물을 챙기던 시절, 대통령이 예뻐서 투자했는가?
금리가 낮은데도 투자수익이 안 나오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성장잠재력이 훼손됐고 성장엔진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다. 여기에다 코리아 리스크는 여전하다. 북한 핵, 노사문제, 경영불투명 등이다. 투자의 양대 구성변수인 ‘기대수익률’과 ‘위험’에서 동시에 탈이 난 것. 경기순환의 문제가 아니라 속(펀더멘털)에 골병이 들었다는 사실, 여기에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돈은 눈이 없지만 ‘이윤의 냄새’를 맡는 후각만은 끝내준다. ‘이 땅에서 돈 벌기 힘들다’는 판단이 서면 방귀 새듯 빠져나간다. 내자(內資)든 외자든 마찬가지다. 산업공동화가 뭐 별건가?
이제 성장동력을 되살리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산업은행이 펴낸 ‘한국의 산업’이란 보고서는 이렇게 쓰고 있다. “제조업은 투자 둔화로 지속 수축 또는 성숙 후 수축의 길을 갈 것이다. 지속성장이 가능한 신기술 벤처산업으로 방향을 틀지 않으면 일본의 ‘잃어버린 10년’과 같은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제조업을 버릴 수는 없지만 제조업 편애(偏愛)에서는 벗어나라는 얘기다. 성장의 대안(代案)을 찾으라는 권고다. 금융 정보 기업평가 컨설팅 등 비즈니스 서비스업이 후보가 될 수 있다. 정보기술(IT) 생명공학기술(BT) 나노기술(NT) 항공우주기술(ST) 환경공학(ET) 시스템통합 등 지식기반산업들도 ‘사람이 재산’인 한국이 고려해봄 직하다. “제조업-첨단벤처-서비스는 어느 한 부분의 경쟁력이 없으면 다른 쪽도 취약해지는 경제의 삼각기반이다. 이 셋이 동시 가동토록 해야 한다.”(산업자원부 김종갑 차관보)
정리하자. 경제엔진이 고장 났다. 정치문제가 아니다. 문제를 냉정하게 봐야 한다. 엉뚱한 현실파악은 문제해결능력 상실로 이어진다.
허승호기자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