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폐기장 건설 문제를 둘러싸고 폭력이 난무했던 전북 부안에서 최근 대화를 통한 합리적 해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아직은 작은 목소리이지만, 핵 폐기장 유치 찬성론도 공론화되고 있다고 한다. 핵 폐기장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이웃 일본의 상황이 우리에게 유용한 교훈이 될 수 있다. 세계 3위의 원자력 대국으로 50여 기에 이르는 많은 원전을 가동하고 있는 일본도 아오모리현 로카쇼무라에 핵폐기물 재처리시설을 건설하고 있지만 중간 저장시설이 또 필요하기 때문에 부지를 선정 중이다. 핵폐기장 유치를 자원한 아오모리현 무쓰시의 유치 결정이 현재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17년 동안 시장을 지낸 스기야마 시장은 핵폐기장 유치에 따른 5000억원의 ‘보상금’으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훌륭한 교육시설과 의료시설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했다. 님비(Nimby) 시설을 유치하는 지방자치단체에 상응한 보상을 해 준다는 점은 일견 우리와 대동소이해 보인다.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일본과 우리는 접근방식에 있어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일본의 경우 무쓰시에 지원케 돼 있는 5000억원의 대부분이 앞으로 들어설 핵폐기물 처리장 관련시설에서 징수될 고정자산세로 충당된다. 이는 무쓰시가 당당하게 징수해 자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돈이다. 무쓰시는 그 돈으로 최첨단의 의료 교육시설을 만들어 인근 지방의 주민까지 이용토록 함으로써 현 세대뿐 아니라 미래 세대의 생활안정까지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계획이 중앙정부의 시혜가 아니라 무쓰시의 주도로 성안되고 실행될 것이라는 점이다. 지자체 스스로 적극적인 지역발전 방안을 찾도록 함으로써 중앙정부와 대타협을 이뤄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정부는 부안에 3000억원 규모의 지원을 해 준다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이 돈은 대부분 중앙정부의 지원금과 보조금으로 충당된다. 당연히 중앙정부는 시혜자로서 이 돈을 집행하는 과정에 개입하려 할 것이다. 이만큼 베풀어 주니 대충 협상을 마무리 짓자는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원자력이 우리나라 총전력생산량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고 핵폐기물 저장 연한이 2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국민 모두가 인식해야 한다.
‘부안사태’는 부안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기를 필요로 하는 모든 국민의 문제인 만큼 모두가 진지한 관심을 갖고 대타협의 지혜를 찾아내야 한다.
정책결정자들은 파격적인 보상과 새로운 정책방향을 제시하면 그것이 선례가 돼 다른 사업을 추진하기 어렵다고 주저하는데 이는 사안의 차별성을 간파하지 못한 것이다. 핵폐기장은 다른 국책사업과 달리 안전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해도 해당지역 주민들이 께름칙하게 생각하는 사업인 만큼 그 마음을 위무할 수 있는 충분한 보상 프로그램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지역주민의 자존심을 살려 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부안뿐 아니라 그 어떤 지역이 이 문제를 떠안게 되더라도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세금을 내 해당지역 발전과 위무에 동참한다는 생각을 갖고 이 문제에 대처해야 할 것이다.
김경민 한양대교수·국제정치학